서른아홉 살의 모노드라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7호 35면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박완서의 소설이자 동명의 연극 제목, 내가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싶은 것)이 뭔지 깨닫게 된 것은 1998년 초봄의 일이었다.

On Sunday 기획칼럼 ‘당신이 행복입니다’

꾹꾹 눌러쓴 유서의 글씨가 뚝뚝 떨어진 눈물에 번져 살아 움직였다. 절망과 좌절. 머릿속에 남은 건 두 단어뿐이었다. 그즈음 나는 10년 개그맨 생활을 접고 연극에 빠졌었다. 몇 푼 안 되던 돈마저 모두 까먹고 대학로에 어렵게 피자집을 차렸다. 이탈리아에 가서 정통 나폴리 피자를 만드는 TV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게 계기였다. 그러나 피자는 팔리지 않았고 빚은 눈덩이처럼 쌓여갔다. 외환위기까지 겹쳐 더 이상 손을 벌릴 곳도 없었다. 죽음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 친구 목소리 한 번은 듣고 싶었다. 알량한 자존심을 접고 손을 내밀 때마다 충고 한마디씩 얹어 돈을 빌려주던 유일한 친구였다.

전화통 너머 친구 목소리를 듣자마자 또 눈물이 터졌다. 그런데 그 친구 왈,
“야, 쇼 하지마! 맥주 사줄게 저녁때 만나자. 나 바빠.”

그 말만 하고는 달랑 전화를 끊어버렸다. 뚜! 뚜! 뚜! 갑자기 허탈해졌다. 팽팽하던 긴장감도 햇살에 녹는 안개처럼 사라졌다.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끊어진 것 같았다. 죽음에 대한 집중도 줄 끊어진 연처럼 바람에 실려 멀어져 갔다.

“그래, 나는 한 번 죽었다. 이제부터는 덤으로 사는 거다.”

그렇게 죽음을 겪고(?) 나는 살아났다. 날마다 아침이면 새로 태어난 것처럼 일어나서 밤이면 죽음을 앞에 두고 기도하며 잠드는 습관도 그때 생겼다. 그때 내 나이 39살이었다. 그 후 피자집이 히트를 쳤다. 체인점도 내고 회사도 차리고 제법 돈도 벌었다. 무엇보다 좋아하던 연극을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가끔 고객 분들이 물어본다.

“나이가 몇이에요?” “서른아홉이에요.” “에이, 거짓말.” “서른아홉까지 세다가 잊어 버렸어요.”

정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태어났다. 휴대전화도 없애고, 머리도 빡빡 깎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맨발로 걷고, 냉수욕을 했다. 여하튼 여태까지 안 하던 짓만 골라 했다. 빡빡 머리를 보고 ‘나무아미타불’ 인사하는 분들께 송구스러워 수염을 길렀더니 이제는 외국인 같다고도 하고, 원숭이 같다고도 한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2007년 6월부터 ‘이 원승이 원숭이’라는 모노드라마를 공연 중이다.

내 삶은 39살에 멈춰 섰다. 39살의 삶은 언제나, 모든 것이 행복이다. 눈을 뜨면 아침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산을 오른다. 환한 햇살과 개 짖는 소리, 새가 날아가는 소리가 내가 살아 있음을 알려준다. 큰소리로 연극 대사를 질러 본다. 연극을 다시 할 수 있다니, 연극 대사를 아침마다 읊조릴 수 있다니, 이런 행복이 어디 있을까.

대학로 피자집 건물은 17년째 나와 함께한다. 늘 그 자리에 언제나 반갑게 나를 반겨준다. 이 또한 행복이다. 건물에는 카페와 어린이집, 소극장도 있다. 넉넉하다. 동고동락하는 직원들, 변함없이 찾아주시는 고객들도 행복의 전령사다. 그래, 행복 멀리서 찾을 것 없다. 눈 돌리면 모두가 ‘행복을 주는 당신’인 것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