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국'이 몰려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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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위한 미국과의 각료급 협상을 타결지음으로써 세계무역체제의 일원이 되기 위한 13년 숙원을 이뤘다.

아직 유럽연합(EU)등과의 쌍무협상과 미국 의회 및 시애틀 WTO각료회의의 승인절차를 남겨놓고 있으나 최대난관인 미국과의 협상을 돌파함으로써 연내 가입은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국제사회가 거의 만장일치로 중국의 가입을 반기고 있고 우리 역시 이를 환영한다.

중국의 가입은 두가지 의미에서 '역사적' 이다. 13억 인구에 세계10대 무역국인 중국이 세계경제체제에 편입돼 국제적 '게임의 룰' 을 적용받게 됐다는 점이 그 첫째다.

거대 중국을 '장외(場外)' 에 남겨두고 세계경제질서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중국의 가입은 곧 중화(中華)경제권 태동의 역사적 시발점이라는 점이 그 둘째다.

기술의 대만과 금융의 홍콩과 거대산업기지 중국이 정치 아닌 끈끈한 인간관계로 중화경제권을 형성하는 날도 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국의 WTO가입은 우리에게 큰 기회인 동시에 엄청난 도전임을 명심해야 한다. WTO가입으로 중국이 단계적으로 관세를 인하하고 서비스부문 등 시장개방을 확대하면 중국에 대한 수출 및 투자진출은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의 무역수지가 연간 10억~17억달러 개선될 것이라는 성급한 계산도 나돌고 있다. 그러나 관세인하 효과가 가시화하는 데 45년이 걸리는 데 반해 미국 등 주력 수출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규제가 풀려 전자.의류.철강.기계 등 우리의 주력상품들의 수출에 큰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산업 및 수출상품 구조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중국의 WTO가입은 우리 경제에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중국에 이어 대만까지 WTO에 가입하면 우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더구나 중국은 개발도상국의 지위로 WTO에 가입한다.

무역상의 최혜국대우가 당분간 유지되고 단계적 시장개방과 경과조치 등 '말미' 를 인정받아 시장공략은 그만큼 더 어렵다. 게다가 가입협상에서 중국이 농산물의 관세인하를 받아들임으로써 뉴라운드 협상과 관련, 한국 등 농산물 수입국을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을 통한 '인해전술' 만으로 중국을 계속 이해하면 큰 오산이다. 구조개혁을 서두르고, 첨단기술 및 기법에 대한 투자와 함께 선진된 게임의 룰로 개방과 경쟁을 적극 수용하는 쪽으로 중국은 급속히 달라지고 있다.

이번 WTO가입이 그 분수령이다. 이대로 가다간 '인해전술' 에서 밀리고, 산업고도화에서도 자칫 중국에 밀릴 우려도 없지 않다. 중국 농산물들이 우리의 식탁을 차지한 지는 오래다.

구조조정을 가속화해 부가가치가 낮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속히 벗어나고 산업고도화를 통해 중국과 격차를 확실히 벌려놓아야 한다.

장기적으로 중화경제권의 등장을 내다보고 경쟁과 협력을 통해 '대중국' 과 공존.공영을 도모하는 중.장기 국가전략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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