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GM, 산은 압박에 자금 투입으로 맞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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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GM 본사가 GM대우에 4912억원을 투입한다. GM이 2월 산업은행에 지원 요청을 했던 1조원의 절반쯤 되는 금액이다.

GM대우는 자금난에 일단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길게 보면 돈 걱정을 완전히 덜었다고 하긴 어렵다. GM대우의 누적적자는 올해 말 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산은은 GM의 결정이 예상 밖이란 반응이다. 하지만 ‘선(先)경쟁력 확보, 후(後)자금 지원’이라는 산은의 입장엔 변함없다. GM과 산은의 협상은 장기전을 예고하고 있다.

GM대우는 23일 GM 본사가 4912억원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21일 유상증자 때 모든 주주가 불참하면서 실권이 된 물량 전부를 인수한 것이다. 애초 GM 몫이었던 2500억원의 두 배에 가깝다. 이로써 GM의 GM대우 지분은 50.9%에서 70.1%로 높아졌다. 우호 지분을 합치면 83%다. 산은 지분은 27.9%에서 17%로 줄어든다.

유상증자로 GM은 급한 불은 다 껐다. 국내 채권단에 진 빚 1조3762억원은 2011년부터 4년간 분할 상환하면 되고, 선물환(50억 달러) 결제도 자동차 판매 호조와 원화가치 상승으로 부담이 줄었다. GM대우의 마이크 아카몬 사장은 “GM대우의 유동성과 재무 상황은 크게 호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과 협상에서 시간을 번 셈이다.

GM은 만만치 않은 자금력도 과시했다. GM대우는 지난 16일 산은 대출 1258억원을 갚았다. 최근 2주일 새 GM측이 마련한 자금이 6000억원을 넘는다는 얘기다. “GM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원은 전 세계에 많이 있다”던 프리츠 헨더슨 GM 회장의 발언은 빈말이 아니었다. 닉 라일리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한 발 더 나갔다. 그는 23일 “필요하다면 보다 장기적인 자금 상환과 관련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산은은 여전히 냉정하다. 4912억원도 산은이 요구한 자구 노력(1조원 이상)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산은 관계자는 “GM이 유상증자 금액을 늘린 것도 산은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산은 요구의 핵심은 GM대우의 차량 개발과 관련한 지적재산권 소유, 생산 물량 확보 등 비재무적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산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는 꼬박꼬박 받을 돈을 받으면 된다”며 “GM대우의 상황이 좋아져 자금 지원이 필요 없어진다면 산은에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GM의 결정에 따라 공은 다시 산은 쪽으로 넘어갔다. GM은 자기 주머니를 털어 돈을 내놓았고, 산은은 압박 카드가 그만큼 줄었다. 상업투자은행(CIB)이 되겠다며 28일 지주회사를 출범시키는 산은으로선 첫 평가전에서 아주 센 상대를 만났다.

이승녕·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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