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어긴 공무원 노조에 ‘법대로’ 옥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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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의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옥죄기가 속도를 더하고 있다. 20일 노동부가 전공노를 불법 노조로 규정한 데 이어 22일 경기도 징계위원회가 손영태(42·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청 7급) 전공노 위원장을 파면했다. 노동부는 단체협약을 문제 삼아 손 위원장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기도 징계위원회가 손 위원장을 중징계한 것은 정부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7월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교사·공무원 시국선언 탄압 규탄 민주회복 시국대회’에 참석한 때문이다. 징계위원회 관계자는 “시국대회를 주도하고 대회 참석을 독려하는 등 혐의가 무겁다”고 말했다.

이날 징계 수위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시국선언 참석자에 대해 파면·해임·강등·정직 등 중징계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도 “실정법을 정면으로 어긴 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파면은 공무원 징계 여섯 가지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으로 공무원 자격을 잃게 되며 연금의 50%만 받게 된다. 해임은 공직에서 배제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연금은 정상적으로 나온다.

손 위원장이 소속된 안양시가 경기도 징계위원회의 의결대로 최종적으로 파면 징계처분 하면 손 위원장은 공무원 신분을 잃게 된다. 따라서 손 위원장은 12월 초로 예정된 통합공무원노조의 출범에 관여할 수 없게 된다. 조합원 자격이 없기 때문에 위원장은 물론이고 일체의 직책을 맡지 못한다. 지난 8일에는 정헌재(44·부산시 영도구청 7급) 민주공무원노조(민공노) 위원장이 해임됐다. 이에 따라 12월로 예정된 전공노·민공노·법원노조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은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통합공무원 노조의 출범과 민주노총 가입 과정에 법의 잣대를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구본충 행안부 윤리복무관은 “공무원이 법에 정해진 테두리를 벗어나 불법행위를 할 경우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 위원장은 징계 결정에 강력 반발해 소청을 제기하고 행정소송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오병욱 통합공무원노조 공동위원장은 “민주노총 가입에 대한 보복이자 노조 탄압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 위법 단협에 적극 개입=노동부가 사법경찰권을 행사해 전 위원장을 입건한 것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 만들어진 1997년 이후 처음이다. 법에 어긋나는 단체협약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바로잡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가 노사관계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 전망이다.

노동부는 무안군청의 단체협약 중 ‘조합 간부의 인사에 대해 노조의 요구가 있으면 반영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임용권 침해조항을 비롯해 46건을 고치도록 했다. 전주시청 단체협약에 대해서는 ‘단협에서 정한 내용에 위배되는 지침과 명령 등은 단협이 우선한다’와 같은 지방정부의 권한을 제약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노동부는 두 자치단체에 대해서는 시정명령을 이행하려 노력한 점을 인정해 입건하지 않았다.

노동부는 올해 7월 두 기관을 포함해 33곳의 지방자치단체에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내렸다. 지금까지 14곳이 명령을 따랐다.

정영진·김기찬·김경진 기자

◆사법경찰권=검사나 경찰뿐 아니라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 범위에 관한 법률’에 의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 등에서 특정 업무를 처리하는 공무원에게는 위반자를 심문하고 입건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 있다. 노동부는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 노동부가 집행하는 법을 어긴 노사에 대해 사법경찰권을 행사한다. 이외에 산림보호·식품단속 ·문화재관리·소방 ·철도범죄· 세관·어업감독·광산관리·무선설비·저작권·양곡관리·농약관리 ·해양환경·방역 업무 등을 담당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공무원, 교사에게도 사법경찰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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