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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노조 문제 불씨 키운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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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정부가 불에 덴 아이처럼 화들짝 놀란 모습이다. 공무원노조 때문이다. 조합원 11만 명이나 되는 전공노·민공노·법원노조가 하나로 합치고, 민주노총에 가입하기로 결의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공무원을 ‘국민의 공복(公僕)’ ‘국민에 대한 봉사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공허하기만 하다.

허를 찔린 정부는 연일 대응책을 내놓기에 바쁘다. 전공노를 법외단체로 규정하고, 공무원노조가 상급단체에 가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행정안전부에 노조 전담부서를 만들고, 공무원이 국가정책을 반대하는 것을 금지하는 쪽으로 복무규정을 바꾸고…. 나열하기에 숨이 찰 정도다. 대책마다 ‘엄정 대처’ ‘엄중 조치’가 수식어로 따라붙는다.

그러나 전형적인 뒷북 행정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앙·지방정부가 문제를 알고도 방치한 것이 화(禍)를 키웠다.

먼저 노사관계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부, 공무원 인사·복무를 관장하는 행정안전부는 서로 ‘우리 부처 일이 아니다’며 공무원노조 업무를 떠넘겼다. 이와 관련해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동 관련 주무부처인 노동부가 공무원노조에 3자처럼 행동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노동부를 비난했다. 인원을 늘리고, 업무영역을 확대하는 데 일가견 있는 관료조직이 왜 이럴까? 공무원이 동료 공무원을 감시하는 일이 내키지 않는 일인 데다 노조 문제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과거 정권에서의 학습효과 탓이다.

정부 기관과 노조의 짝짜꿍도 가관이다. 노사협약이 법령·규칙보다 우선하도록 규정한 곳이 대전 중구와 제주교육청 등 36개 기관이나 된다. 공무원의 근로조건을 바꾸려면 관계 법령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이런 협약이 효력이 없는데도 단체장이 버젓이 협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노조 가입 자격이 없는, 5급 이상의 공무원이 후원금을 내면서 노조의 후견인 역할을 한다. 지난해 연인원 2만6000명이 4억7800만원을, 올해는 9월까지 연인원 4057명이 1억1300만원을 냈다. 5급은 시·군·구의 과장 또는 읍·면·동장으로, 공무원 사회의 중추다. 노조에 뒷돈을 대고 있는 간부들에게 노조 관리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개인 차원에서 후원금을 낸 것일 뿐 정부나 시장·군수가 몰랐다고 둘러댈 수도 있다. 그러나 월급에서 후원금을 원천징수해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자치단체와 노조의 밀월 관계는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단체장은 노조에 밉보이면 선거에서 당선을 보장할 수 없으니 인기 관리를 위해서라도 노조를 끌어안아야 한다. 부시장이나 부군수가 시·도에서 발령받아 오면 노조가 앞장서 실력 저지하는 지역이 있다. 중간간부 입장에서는 직업 공무원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를 노조가 확보해주니 보답해야 한다.

그동안 못 본 체하고 지나온 것을 잘 챙기기만 해도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김상우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