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日 책 판매도 '튀는 아이디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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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고서점가로 유명한 도쿄(東京)의 간다(神田). 지하철 진보초(神保町)역을 중심으로 고서점들이 방사형으로 빼곡이 들어서 있다. 불황에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한창때만은 못하다고 하지만 아직은 도쿄의 명물 중 하나다.

그저 곰팡내나는 고서점들만 죽 들어서 있는 것이 아니다. 헌책을 뒤지다 피곤해진 다리를 쉬어가도록 카페.음식점.선술집들이 골목골목 자리잡고 있다.

양서(洋書)전문점 부근에 커피향기에 버터냄새 풍기는 카페가 있는가 하면 일본고서 전문점 근처에는 스시집이나 꼬치구이(야키도리)집이 눈에 띈다. 영화관도 있고 대형 문방구.스포츠용품점들도 있다. 이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요즘엔 이곳의 1백41개 서점으로 결성된 간다고서점연맹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 고서정보를 수시로 갱신해 독서광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 매년 가을엔 '헌책 축제' 도 연다. 올해도 지난 10월 29일부터 6일간 헌책 바겐세일과 희귀본 발굴행사가 열려 수십만명이 몰렸다.

신간서점들도 이에 뒤질세라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산세이도가 도쿄역 앞에 카페형 서점 '북스 & 카페' 를 여는가 하면 인터넷을 통해 앞으로 나올 책에 대한 예약서비스도 시작했다.

또 기노쿠니야는 손님이 헛걸음하지 않도록 미리 재고를 인터넷으로 확인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이달부터 가동했다.

전문화도 급속히 이뤄져 만화.미술.사진.패션 등 특정 분야의 서적만 취급하는 전문서점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추리소설.공상과학소설(SF) 전문의 '미드나잇 플러스 원' 이나 만화전문점 '망가노모리(漫畵の森)' 등은 관광안내책에도 이름이 올랐다.

첨단기술을 응용해보려는 출판사들의 아이디어도 반짝인다. 책 4권을 하나의 메모리칩에 입력해 책크기만한 휴대용 모니터에 띄워 읽도록 하는 전자서적이 이달초 등장했다. 메모리칩은 서점.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데다 책보다 20~30% 싸다. 또 메모리칩에 입력되는 데이터는 출판사가 위성통신을 통해 각 서점과 편의점으로 직접 전송해주므로 유통.재고비용이 덜 든다.

책과 관련된 사업들이 자꾸 생겨나다 보니 이제는 화학처리를 통해 책의 수명을 4백년까지 늘려주는 기업도 등장했다. 40권이 들어가는 50ℓ짜리 박스당 3만2천엔이므로 권당 8백엔만 들이면 몇대 후손들에게도 책을 대물림해줄 수 있는 셈이다.

독서인구가 두텁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서점.출판사들이 갖가지 사업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은 나름대로 배경이 있다. 얼마 전 요미우리(讀賣)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한달에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 일본인이 53%나 됐다. 독서율이 이처럼 낮아진 것은 사상 처음이라 서점.출판사들은 엄청난 위기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 게다가 인터넷의 보급으로 독서량이 쉽게 늘어날 전망도 없다.

그래도 이들은 단순히 책을 많이 읽자는 호소형 캠페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책 소비를 자극하기 위한 마케팅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간다의 '헌책 축제' 만 해도 말이 축제일 뿐 주목적은 매상을 올리는 데 있다.

독서를 '책의 소비' 라는 경제적 시각으로 본다면 한국에서도 이런저런 독서 비즈니스가 나올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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