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업주에 고용된 공무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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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천 호프집 화재참사와 관련해 드러나고 있는 공무원의 부패와 비리상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단속 책임이 있는 경찰간부가 업주의 집에 공짜 세를 들고 업소의 불법행위에 대해 112신고를 받은 경찰관들이 허위로 처리일지를 작성한 사실이 확인되는 등 심상치 않다 했더니, 호프집 실소유주가 뇌물을 주었다고 밝힌 공무원이 경찰서.소방서.구청 등에 60명이 넘는다고 한다.

업주가 운영해온 9개 업소의 수입 1억원 가량에서 매월 2천만원 정도가 뇌물로 건네진 것으로 보인다는 수사 관계자의 말이고 보면 지금까지 드러난 접객업소 비리 중 최대 규모가 아닐까 싶다.

규모도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로 드러난 비리의 성격을 보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기생(寄生)비리가 아니라 철저한 유착비리이기 때문이다.

불법업소를 둘러싸고 벌어진 관련 공무원들의 행위는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이질 않다. 문제의 호프집 업주가 운영해온 업소는 모두 무허가이거나 신고되지 않은 불법업소였다. 이를 단속해야 할 공무원들은 그러나 한결같이 돈에 매수된 상태였다.

그들의 행태는 눈을 감는 정도가 아니라 업소에 단속정보를 알려주고 공문서까지 조작해 시민들의 신고를 묵살하는 등 업주에게 고용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를 넘어 썩은 고기를 보고 몰려드는 하이에나 수준이다.

우리는 이처럼 철저하게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공무원들의 유착 행태에 충격과 분노를 넘어 절망감마저 느낀다. 최소한의 양심마저 팽개친 그들을 두고 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청소년문화 개선책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참사는 직분을 망각한 공무원들에 의해 저질러진 관재(官災)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공무원들을 국민의 대리인으로 내세운 정부도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대충 넘어가서는 안된다. 공무원들의 부패상을 있는 그대로 밝혀 엄벌하고 공직기강을 다시 세우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려면 수사가 제대로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관할 경찰서에서 인천경찰청으로 넘어갔던 수사를 검찰이 맡은 것은 늦으나마 잘 된 일이다. 업주와 접촉한 일선 하위직뿐만 아니라 상급자들의 비리와 직무유기는 없었는지 제대로 밝혀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드러난 구조적 문제점을 검토해 공무원의 의식과 행동을 개혁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이번 참사를 대형 인명사고 이전에 심각한 공직사고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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