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 학교가 울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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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젊은 여교사가 점심시간에 동료 교사들에게 하소연한다. "애들이 떠들어서 야단을 쳤더니 한 애가 혼잣말로 '씨팔!' 그래요. " "그래서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하긴요. 너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다가 못들은 것처럼 했어요. "

"툭하면 결석하는 녀석에게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면서 살면 안된다고 했더니 그 녀석이 하는 말이 자기 인생에 참견하지 말래요. 기가 막혀 한 대 때렸더니 '학교 그만두면 될 거 아니냐' 고 악을 쓰면서 대들어요. " "악이 받친 건 애들뿐인가요□ 어떤 땐 선생이라는 거 다 잊어버리고 교탁을 뒤집어 엎고 다 때려 부수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 "애들이 그런대요. 수업 지루하게 하는 선생은 다 감옥 보내야 한다고. 그래서 전 그랬어요. 차라리 감옥이 낫다고. " 현직 교사인 김혜련씨가 쓴 '학교 종이 땡땡땡' 에 나오는 대목들이다.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있다. 초등학교는 초등학교대로, 중.고교는 중.고교대로 교실이 흔들리고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고 아우성들이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비명을 지른 것은 주로 아이들 쪽이었다. "됐어. 이젠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긴 너무 아까워…. " 지난 92년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 은 이렇게 노래하며 비명 아닌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제 그 비명소리는 교무실쪽에서 더 크게 들려온다. "난 매시간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기도한다니까요. 제발 이 시간에는 내가 화내지 말고 아이들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 "수업 종소리가 고문받으러 가라는 소리처럼 들린 지가 어제 오늘의 일인가요. "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교육개혁을 한다고 했고 거창한 계획도 줄줄이 발표했는데 어째 이 모양일까. 무너지고 있는 건 초.중.고교만이 아니라고 한다.

요즘엔 대학 강의실마저 중.고교 교실의 분위기라고들 한다. 하긴 그렇다. 엊그제까지 중.고교생이었던 게 지금의 대학생인데 하루아침에 사람이 달라질까.

누구는 말한다. 이건 모든 게 아이들을 너무 멋대로 내버려둔 탓이라고 - . 교사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아이들에게 단호하게 'NO!' 라고 말하게 하고 때로는 매도 들게 해야 한다고 - .

또 누군가는 말한다. 주된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고 - . 가정에서부터 엄하게 버릇을 가르쳐야 한다고 - . 그런가 하면 다른 누구는 오히려 현재 아이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억압에 문제의 뿌리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시각에 따른다면 아이들을 지금보다도 더 '네 멋대로' 하게 해야 한다. 아이들을 한 가지 길, 한 종류의 틀 속에 억지로 몰아 넣으려 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논란은 백년을 해도 한 쪽으로 결론이 나지는 않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종교논쟁, 이데올로기 논쟁처럼 끝없는 것이고 결국은 선택하는 수밖에 없는 성격의 것이다.

역대 정권마다 시도한 교육개혁이 왜 하나같이 용두사미가 됐는가. 중지(衆智)를 모으지 못한 때문인가.

아니다. 교육에 관해 일가견이 있다는 사람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소집' 돼 개혁안을 짜냈다.

그러면 왜일까. 논의로서는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 선택이 불가피한 문제를 던져놓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답을 내라고 했으니 모두가 불만인 답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런 교육개혁안이었으니 교육현장에 아무런 변화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교육은 결코 행정의 일부인 정도가 아니라 사회체제의 근간이며 그 밑바탕에는 이데올로기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집권 후에나 계획을 마련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각 정당들이 선거 전에 그 세부 청사진을 제시해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할 성질의 것이다. 그래서 집권 후에는 정권의 운명을 걸고 국민의 일부와는 마찰을 감수하면서 밀고 나가야 할 근본적인 문제다.

이제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당들은 교실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는 귀머거리다. 아이들이 울고 교사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소선거구제니, 중선거구제니, 신당이니 합당이니 하는 소리가 가슴에 와닿겠는가.

이제라도 정치권은 학교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교육개혁을 가장 큰 정치쟁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교육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지만 교육현장을 이대로 둬서는 안된다는 점만은 모든 정당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비명소리나마 난다는 것은 그나마 학교의 목숨이 붙어 있다는 증거다. 비명소리마저 그친다면 정말 큰 일이다. 서둘러 손을 써야 한다.

유승삼 중앙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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