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메아리] 선본사사태로 썰렁한 갓바위 참배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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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일 오후 5시 팔공산 갓바위 약사여래불 앞 광장. 세찬 바람을 가르며 해는 서녘으로 기울고 있었다. 기도를 드리는 참배객 30여명의 모습이 전에 없이 '썰렁' 해 보였다.

눈에 띄게 줄어든 기도객 숫자 때문만은 아니다. 곳곳에 진을 친 경찰, 분주한 무전음 교신소리,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를 서고 있는 스님들. 이런 모습들이 신성해야 할 기도 도량과는 너무도 부조화를 이뤘다.

지난달 26일 정화개혁회의측의 기습으로 시작된 선본사사태가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이틀동안은 정화개혁측과 총무원측 사이에 충돌이 없긴 했다.

어쨌든 유혈충돌까지 빚은 이번 사태로 이곳을 찾는 시민들은 물론 불자들도 적잖이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때문에 갓바위를 찾는 행렬이 끊기다시피 하고 있다.

갓바위 접수창구에는 "이젠 가도 되느냐" 는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공양미나 양초 등을 파는 선본사 주차장의 한 상가는 이 사태가 있기 전 일요일 매출이 2천만원에 달했으나 지난 일요일엔 4백만원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경남 거창에서 왔다는 한 아주머니는 "여기가 충돌이 빚어진 그 선본사냐" 며 무척 당황해 했다.

저녁 6시 목탁소리와 함께 갓바위 정상에서 스님의 독경이 울려퍼졌다. 그러나 기도객은 고작 10여명. 수능시험을 앞둔 아들을 위해 매일 이곳을 찾는다는 한 아주머니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이래도 되는 거냐" 며 스님들을 원망했다.

갓바위 종무소에서 만난 해문(海門)스님은 "요즘 신자들 보기가 민망하다" 고 고백했다. 젯밥 싸움에 애꿎은 시민들의 안식처만 빼앗겨 버린 것이다.

등산객이나 불자들은 하루 빨리 발디딜 틈없이 모인 기도객들을 헤집고 전처럼 갓바위 부처를 만나고 싶어한다. 그것도 전처럼 아주 신성한 분위기 속에서.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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