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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비즈] “기업경영과 예술은 환상 궁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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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공장에서 열린 첫 이건음악회가 끝난 뒤 공장문을 나서던 직원과 시민의 행복한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건산업 박영주(68) 회장은 올해로 20년째를 맞는 이건음악회가 처음 열리던 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건음악회는 기업이 단순히 후원을 하는 게 아니라 직접 기획과 진행까지 하는 예술 행사다. 신예 피아니스트 김선욱(21)씨가 연주자로 나서는 올해 음악회는 22일 서울 예술의 전당 등 전국 6개 도시에서 무료로 개최된다.

1990년 첫 행사를 치를 때만 해도 이건산업은 인천의 작은 합판 공장에 불과했다. 당시 박 회장은 사업장이 있는 인천 지역 사회에 무엇으로 공헌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 애호가였던 박 회장이 음악회 아이디어를 냈다.

중소기업인 이건이 대규모 음악회를 매년 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행사는 중단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당시 출연료로 거액의 달러를 지출할 수 없어 한 해 거를 것을 각오했는데 연주자였던 미국 로드 아일랜드 색소폰 4인조 측에서 선뜻 무료 출연을 약속해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예술과 기업경영이 서로 잘 어울리며 앞으로 중요성이 더 커진다고 했다. 그는 “예술 활동은 기업 이미지 개선에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훌륭한 인재를 키우는 데도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대량 생산 체제에 맞춰 직원을 비슷하게 훈련시켰지만, 변화된 시대에 맞추려면 다양한 소양의 인재가 필요한데 예술경영이 여기에 적합하다는 뜻이다. 또 기업의 사회 공헌도 과거 소득이 낮을 때는 소외계층의 의식주를 돌보는 게 중요했지만, 이 분야에 정부가 기초적인 지원을 하는 요즘에는 예술 활동의 의미가 더 크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회장은 “기업의 사회 공헌은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것인데 오늘 날 소외된 계층·지역이 뭘 가장 원하는 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문제였다면 오늘날 소외 계층은 인생을 풍요하게 할 예술적 체험·경험·교육이 부족하므로 이런 부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현재 기업과 예술가들을 연결하는 한국 메세나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것도 그의 이런 견해를 볼 때 자연스럽다.

그의 사업 방침도 음악회 못지않게 호흡이 길다. 올해 초 이건산업은 솔로몬 군도에 확보한 조림지에서 처음 나무를 베었다. 처음 조림사업을 구상한 지 23년, 묘목을 심은 지 13년 만이다.

박 회장은 “조림을 시작할 때는 생전에 나무를 벨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현지 기후와 토양이 좋아 결실을 봤다”고 말했다. 이건은 본격적인 조림 사업에 앞서 현지에 문화재단과 병원부터 지었다. 주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다. 나무를 벤 만큼 새로 심겠다는 약속도 어김없이 지키고 있다. 조림 사업의 매출 규모는 아직 크지 않지만 박 회장으로서는 가슴 뿌듯한 결실이다. 처음 목재 사업에 나선 20대에 꿈꿨던 ‘씨앗부터 폐목재 재활용까지의 수직 계열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는 “큰 사업은 덕으로 해야 한다”며 “나무도 사람도 사업도 결과를 재촉하기보다 물을 주고 관심을 기울이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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