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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통합’ 흐름 빨라진 중국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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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한국 기업은 중국에서 일고 있는 통합(integration)의 흐름에 준비돼 있는가.” 지난 14일 본사 주최로 서울 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열린 ‘제3차 한·중미래대화’에 참가한 중국 측 토론자가 던진 질문이다. 흐름의 구체적인 방향을 묻는 질문에 그는 ‘생산 공정의 통합’ ‘생산과 소비의 통합’이라고 답했다. 중국의 산업 패러다임이 분절(分節)에서 통합으로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의 주장을 해석하자면 이렇다. 그동안 중국은 제품 생산 공정 중 조립 단계를 특화했다. 저임 노동력이 경쟁력이다. 장쑤성 우시(無錫)의 소니공장 컬러TV가 한 예다. 이 TV는 아시아 기업들의 합작품이다. TV박스는 태국에서, 전자센서는 일본에서, LCD모니터는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식이다. 중국은 이 부품을 조립해 미국 등 제3국으로 수출할 뿐이다. 이 분업 체계는 지금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고부가 부품도 자국 내에서 생산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부품·소재 분야 연구개발(R&D)에 거금을 투자하고, 또 관련 기술을 가진 해외 업체를 끌어들인다. 전체 생산 공정을 중국 안으로 통합시키겠다는 취지다.

생산과 소비의 통합 움직임도 저류에서 감지된다. 중국 제품은 상당 부분 미국·유럽연합(EU) 등 서방시장에 수출돼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내수시장을 키워 생산제품이 자국 내에서 소비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방침이다.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은 아니지만 그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세미나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우리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삼성전자의 LCD공장 중국 진출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이 회사는 지난 16일 쑤저우(蘇州)에 LCD공장을 짓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2억 달러를 투입해 최신 생산 라인을 깔 계획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현지 완제품 업체(대부분 중국기업)와의 공급라인을 강화하고, 급성장하는 중국 TV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중국 TV업계에서 일고 있는 통합 움직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중국 TV업계는 ‘통합’ 중이다. 우시의 TV 완제품 공장은 부품의 국내 조달 비율을 높이고 있다. 외국 공장은 중국기업에 LCD부품을 수출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중국은 세계 최대 고화질TV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시장을 외면하고는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삼성전자에 앞서 이 분야 경쟁사인 LG필립스, 대만 폭스콘 등이 중국 진출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통합의 흐름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세계 최대 시장에서 멀어질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자동차·선박 등 다른 산업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는 그나마 앞선 기술이 있기에 통합의 흐름에 합류할 수 있었다. 기술이 없다면 국제 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 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키우고, 정부가 부품·소재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할 이유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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