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유언비어 퍼뜨린 집권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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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8일 밤 언론장악 문건의 전달자가 밝혀지면서 국민회의 당직자들은 중앙일보 기자들에게 "우리가 빚을 졌다" (林采正정책위의장), "중앙일보에 분명한 해명을 할 것이다" (韓和甲사무총장), "마음고생이 많았겠다. 앞으로 잘 풀어나가자" (金玉斗총재비서실장)고 했다.

29일 오전에는 이영일(李榮一)대변인이 당을 대표해 중앙일보에 공개 사과했다.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에게 문건을 건네준 사람이 평화방송 기자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잘못하고서도 사과는커녕 도리어 큰 소리 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정치권의 풍토에 비춰볼 때 국민회의의 사과는 용기있는 태도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과 한마디로 끝나기에는 중앙일보가 입은 상처가 너무 크다. 문건 전달자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면 중앙일보는 계속 누명을 쓰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문건이 공개된 지난 25일부터 제보자가 밝혀진 28일 밤까지 국민회의측은 집권당으로서의 금도(襟度)를 잃었다. 중앙일보를 음해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李대변인은 27일 "중앙일보 간부가 鄭의원에게 문건을 전달한 것으로 본다" 고 공식 발표했다. 아무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마치 중앙일보가 鄭의원과 유착돼 있는 것처럼 단정적인 표현을 쓰면서 국민을 호도하려 했다.

상당수 국민회의 의원들과 부대변인들도 유언비어 본격 유포에 나서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 수많은 중앙일보 간부의 이름이 이들에 입에 의해 퍼져나갔다.

이번 사건의 한 당사자인 이종찬(李鍾贊)부총재측은 문건 제보자가 밝혀졌는데도 녹취 운운하며 중앙일보 개입설을 고집하다 29일에는 태도를 바꿨다.

국민회의는 한번의 사과로 그간의 무책임한 언행을 몽땅 덮고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얼굴없는 엉터리 제보를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집권당이 국민에게 '믿고 밀어달라' 는 말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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