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핵위기의 회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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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선언은 세계를 긴장시켰다. 냉전종식으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평화시대를 바라보고 있던 시점이었다.

새 국제질서 속에 아직 편입되지 않고 남아 있는 몇개 고립국가 중 하나인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은 세계평화에 대한 큰 위협으로 여겨졌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40년에 걸친 고립정책은 이로 인해 한계점에 부닥쳤다. 핵무기 보유 '가능성' 만으로는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명분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핵무기 보유 가능성이 농후한 나라를 계속 무시하고 국제질서 밖에 버려두는 것은 세계평화에 너무나 큰 위협이었다.

미국은 북한을 국제질서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향을 모색하기로 했다. 끌어들이려 노력하는데도 북한이 응하지 않는다면 더 강경한 조치를 취할 명분도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소련과 중국의 보호를 잃어버린 북한이 국제사회에 복귀하려는 동기도 없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미국은 로버트 갈루치 국무차관보를 수석대표로 협상단을 구성,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이 이끄는 북한 협상단과 6월초부터 고위급 회담을 했다.

이 회담은 곡절 끝에 이듬해 10월 북한측의 핵안전조치 수용과 미국측의 경수로 제공을 골자로 한 기본합의문을 도출, 위기의 불을 껐다.

당시 미 국무부 북한 담당관으로 협상단에 참여했던 케네스 퀴노네스가 '북한의 핵위협' 이란 제목으로 회고록 집필을 마무리하고 있다.

우리 운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불바다' 한 마디에 우왕좌왕하던 우리로서는 한반도 상황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회담 당사자가 아닌 한국측은 북한측의 통미봉남(通美封南)전략이 두려워 남북대화 확대를 북.미간 협상타결의 전제조건으로 삼을 것을 미국에 요구했다. 그러나 대화를 위한 진정한 의지가 있었는지 퀴노네스는 의심스럽게 본다.

94년 3월 협상타결 전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한국측이 찬물을 끼얹어 협상을 결렬시키고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조속한 협상타결을 바라는 퀴노네스의 입장에서 한국측 사정을 이해하기보다 일을 어렵게 만든 점을 원망하는 마음이 앞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측의 무책임성은 다른 면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협상단은 한국의 입장을 존중, 회담 진행상황을 정기적으로 한국 정부에 알려줬다.

그러나 이 정보가 한국 언론에 너무 쉽게 새나가기 때문에 통보를 중단했다고 한다. 퀴노네스의 회고를 보자면 당시 김영삼 정부는 핵위기를 해소하기보다 북한의 고립상태를 지속시키는 데 몰두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정말 그랬을까. 사실은 앞으로 더 밝혀지겠지만 우리는 우리 일을 너무 모르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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