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통상장관회의 난항] 암초걸린 뉴라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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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뉴라운드 출범을 위한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불과 5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각국의 입장차이는 좀체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25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WTO 주요 회원국 24개국 통상장관들의 비공식 각료회의에서도 각국은 서로간의 입장차를 재확인했다.

지난 7일 WTO 일반이사회의 알리 움추모 의장이 선언문 초안을 제시한 이후 농산물 수출국과 수입국 그룹들이 상반된 수정안을 낸 후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앞서 마이크 무어 WTO 사무총장은 농업분야의 견해차로 선언문안 수정작업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지난 21일부터 직접 20개 주요국 대사들이 참여하는 비공식회의를 소집, 절충을 시도했다.

그러나 무어 사무총장의 조정안 역시 '농산물도 공산품과 똑같이 무역장벽을 낮추자' 는 농산물 수출국들의 종전 주장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수입국들이 반발하고 있다.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며 지금까지 뉴라운드 협상의 의제조차 확정하지 못하자 일부에서는 이?뉴라운드 협상의 좌초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와 관련,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일단 농업분야는 미결상태로 남기고 서비스.공산품 분야 등의 선언문 조정작업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고 전망했다.

◇ 아직도 확정하지 못한 협상 의제〓미국은 뉴라운드 협상을 3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끝내려면 농업.서비스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유럽연합(EU).한국.일본 등은 각종 의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자고 맞서고 있다.

이와 관련, 파스칼 라미 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미국이 내놓은 뉴라운드 의제들은 산적해 있는 과제들을 풀어가기엔 너무 협소하다 "며 미국측이 변화를 보이지 않을 경우 뉴라운드 출범 자체에 제동을 걸겠다고 지난 22일 경고했다.

EU는 무역협상이 농업.서비스 분야만 다룰 때 대다수 WTO 회원국들이 미국의 들러리로 전락, 반쪽 무역협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EU는 투자.환경.경쟁정책 외에도 노동자 지위.문화 예외규정 등의 의제를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 최대 쟁점은 농산물 분야〓각국의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분야는 농업보조금.관세 철폐다. 농산물 수입국들은 점진적 자유화를 희망하고 있으나 케언즈 그룹 등 농산물 수출국가들은 농산물도 공산품과 같은 수준으로 무역장벽을 낮춰야 한다며 거센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슈가 되고 있는 '농업의 다기능성' 은 각국의 농업이 동.식물을 보호하고 국민건강 및 식량안보 등 비교역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개념. 특히 EU.한국 등이 적극 옹호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각료선언문 초안에 '다기능성' 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농산물 수출국.수입국간의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 개발도상국의 불만〓개도국들은 뉴라운드 출범 시기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AFP통신은 "개도국들이 아시아.브라질.러시아 경제위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무역협상을 시작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고 24일 보도했다.

특히 이들 국가는 환경문제가 협상의제로 채택되는 데 반대하고 있다. 또한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에 따라 자신들은 시장을 대폭 개방했지만 현재 혜택을 전혀 보지 못했다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이집트 등 개도국들은 나름대로 기존 협정에서 인정받은 개도국 우대조치를 철저히 이행해 무역자유화에 따른 실질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한국측 입장〓농업의 점진적 자유화를 주장하고 이같은 입장이 선언문에 반영되도록 강력히 요구한다는 것이다. 또 앞으로의 협상목표를 농업분야와 서비스분야 일부 업종 등 국내에 민감한 분야의 개방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데 둔다는 전략이다.

우리 경제구조상 다자무역체제로 인한 수혜가 많은 만큼 뉴라운드 출범에는 적극 참여하되 실리를 최대한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농산물분야 외의 공산품 관세인하와 반덤핑 규정 개정 등은 우리측에 유리한 사안인 만큼 의제에 포함되도록 적극 주장하는 한편 투자.경쟁정책의 규범제정은 지지키로 했다.

홍병기.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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