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美은행법, 무엇을 어떻게 바꿀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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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금융 겸업주의를 도입한 미국의 새 은행법은 실은 금융시장의 변화를 제도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금융시장은 벌써 저만큼 앞서 가있는데도 30년대의 법이 발목을 잡고 있다가 시장의 압력에 못이겨 현실을 수용했다는 얘기다.

그동안 미국에서 금융기관간 업무영역을 갈라온 것은 이른바 글라스-스티걸법으로 알려진 미은행법(1933년)과 은행지주회사법(1956년). 이에 대한 개정 요구는 벌써 20년 전부터 제기됐다.

각종 금융 신상품이 쏟아지고 금융업의 국제화가 진행되는 마당에 대공황 시대의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분업주의의 틀로는 급변하는 시장의 요구를 담아낼 수 없다는 주장이다.

◇ 무엇이 바뀌나〓지금까지는 은행.증권.보험업이 고유업무 이외에 다른 업종의 업무를 취급할 수 없었다. 물론 다른 업종끼리는 합병도 불가능했다. 앞으로는 이 벽이 허물어져 자유롭게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거나 다른 업종의 금융기관을 매수.합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예금보험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이른바 도매은행(부자들을 상대로 거액 예금을 취급하는 은행)은 일반 상업은행의 자회사가 될 수 없다.

◇ 금융업 판도변화〓그동안 진행돼온 동업종간 합병을 통한 대형화에 이어 다른 업종간 매수.합병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당장 메트로폴리탄생명.AIG.프루덴셜 등 미국의 3대 보험사가 대형 은행들의 합병대상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또 메릴린치 등 몇몇 대형 증권사가 체이스맨해튼 은행 등의 매수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메릴린치는 일부 신탁전문 중견은행의 인수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합병바람이 한차례 불고나면 미 금융권은 갖가지 금융상품을 망라하는 대형 종합금융회사와 한가지 분야에 특화한 전문 금융기관, 지역에 기반을 둔 소규모 금융기관 등으로 3원화될 전망이다.

◇ 누가 덕보나〓그동안 분업주의에 가로막혀 업무를 넓힐 수 없었던 금융기관들이 가장 큰 수혜자다. 소비자들에게도 겸업의 혜택이 돌아간다. 다양한 서비스의 편리함과 함께 금융기관의 시너지효과와 경비절감으로 장기적으로 금융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들도 회사채 발행과 대출, 기업공개와 보험업무 등을 같은 금융기관에서 일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 비밀보호 논란〓소비자단체는 이번 은행법안이 개인 금융정보의 보호라는 점에서 후퇴했다고 지적한다. 겸업화된 대형 금융기관과 거래할 경우 개인의 금융정보가 한곳에 송두리째 노출된다는 주장이다. 새 법안에서는 금융기관이 개인 금융정보를 외부에 제공할 때는 본인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내부적으로 유통되는 정보가 고객에게 불리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김종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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