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인도적 차원 대북 지원은 주저할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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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정부가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 문제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한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북측이 “남측의 성의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인도적 지원을 공식적으로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정부의 고민을 이해 못 할 바 아니지만 인도적 지원에 관한 한 좌고우면할 이유가 없다. 조건을 붙이지 말고, 적십자나 국제기구를 통해 최대한 서둘러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남측은 11월 중 서울과 평양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고, 내년 설께 금강산에서 또 한 차례 상봉 행사를 갖자고 제안했다. 북측은 뚜렷한 대답을 피한 채 인도적 지원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남측도 북측 요청에 “돌아가서 검토하겠다”며 즉답을 주지 않았다. 만성적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 주민을 돕는 게 인도적 문제이듯 분단의 아픔으로 신음하고 있는 이산가족들에게 상봉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인도적 문제다. 두 가지 모두 그 자체로 소중한 가치를 갖는다. 서로 연계해 조건부로 접근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대북 제재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 지원에 나서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정부의 고민도 이 점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안보리 결의 1874호도 인도적 지원은 금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대규모 지원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적십자 차원에서 논의할 사항이 아니다. 남북 정부 당국 간 회담에서 협의할 문제다. 북한이 과거 노무현 정부 때처럼 30만~40만t 규모의 식량과 비료 지원을 기대한다면 북·미 대화에만 목을 맬 게 아니라 남측과의 당국 간 대화에도 적극 나와야 한다. 여기서 핵 문제를 포함, 남북 당국 간 현안에 대해 성의 있게 논의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순리다.

적십자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정도의 인도적 지원이라면 남측은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이산가족 상봉이란 인도적 문제에서는 북측도 무조건적인 성의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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