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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복수노조, OECD와의 13년 전 약속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995년 3월, 공로명 당시 외무부 장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장 클로드 페이 사무총장에게 한국이 OECD에 가입하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김영삼 정부의 신경제 5개년 계획에 따라 1996년 OECD에 가입하기 위한 첫발을 뗀 것이다. 가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사가 시작됐다. 이듬해 7월까지 이어진 심사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분야 중 하나는 노동이었다. 노동운동을 탄압하던 시절의 잔재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강하게 나왔다. 특히 미국의 주장이 강했다. 회원국들은 복수노조, 공무원과 교원의 단결권을 제한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정부는 96년 10월 이사회에 노동법을 고칠 것을 약속한 후에야 29번째 OECD 회원국이 될 수 있었다. 노동법을 실질적으로 고치는지에 대한 감시를 받는 조건이 따라붙었다. 한국 정부는 이때부터 2007년까지 11년간 국제사회에서 노동감시 대상국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렇듯 복수노조는 글로벌 스탠더드인 동시에 OECD와의 약속이다. 정부는 그동안 우여곡절을 거쳐 내년 1월부터 이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그런데 노동계가 이 약속을 지키면 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노총은 15일 전국 대의원 회의에서 복수노조 허용 및 유급전임제 폐지를 저지하기 위한 총파업을 결의했다. 한나라당과 맺은 정책 연대를 파기하고 차기 대선까지 모든 선거에서 한나라당 낙선운동을 펴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과의 연대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수노조는 노동자의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노조가 반겨야 할 일이다. 그것은 노조와 별문제 없이 지내는 기업들이 복수노조 허용을 거북하게 생각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노조가 복수노조 허용과 유급전임제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자신들은 조금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집단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노동계는 그동안 OECD 약속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다. 99년 교원노조 인정과 민주노총 합법화, 2004년 공무원노조 인정, 모두가 OECD와의 약속과 무관치 않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기들에게 불리하다며 약속을 깨겠다는 것은 염치 없는 짓이다.
한국 경제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어렵게 벗어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파업은 경제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특히 국제사회와의 약속 파기는 적지 않은 비용을 치를 각오해야 한다. 정부는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 중인데 모든 FTA 협정문에는 ‘노동장’이 있어 글로벌 기준을 요구한다. OECD는 아직도 한국의 노동 분야를 주시하고 있다. 한국은 노동감시국에서 제외됐지만 2010년 복수노조 허용과 그 이후 진전 상황을 OECD에 보고해야 한다. 내년에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키는 당당한 한국으로 20개국 정상을 초청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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