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기술과 산업기술 사이 '죽음의 계곡'을 메워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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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호 20면

최근 가동에 들어간 ‘인공 태양’ 핵융합로. 기초연구의 상징으로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국가핵융합연구소에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올해 정부의 과학기술(연구개발) 전체 예산은 12조3000억원이다. 이 중 4조12억원(32.4%)을 지식경제부가 배정받았다. 교육과학기술부의 관련 예산은 3조8975억원(31.6%)이다. 지난해에도 지경부가 교과부보다 과학기술 예산을 더 많이 확보했다. 이는 정부 조직 개편으로 과거 교과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대거 지경부로 옮겨가 교과부의 연구개발 예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부-지식경제부, 이원화 체제 성공하려면

게다가 지경부는 옛 과학기술부·정보통신부의 연구개발 예산까지 확보하게 됐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짜면서 연구개발 예산을 올해보다 10.5% 늘어난 13조6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이 가운데 지경부 몫은 4조4062억원(32.3%)으로 교과부(31.9%, 4조3558억원)보다 역시 많다.

지경부와 교과부의 연구개발 예산 순위는 이변이 없는 한 당분간 바뀌기 힘들 전망이다.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선 교과부의 핵융합장치·우주 개발 등 ‘빅 사이언스’ 프로젝트보다 지경부의 녹색성장과 신성장동력 개발을 우선해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가 기초연구를 계속 늘려나가고 있어 두 부처 간 연구개발 예산 격차가 더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과학기술 예산만 놓고 보면 2강 체제가 확고히 자리 잡는 형국이다.

문제는 과학기술 예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교과부 산하 정부 출연연구기관(기초기술연구회 소속 13개)과 지경부 산하 정부 출연연구기관(산업기술연구회 소속 13개)이 양분됨으로써 생기는 비효율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대전 대덕단지에 몰려 있는 이들 연구기관은 과거에는 교과부(옛 과학기술부)의 지휘를 받았으나 이젠 지휘체계가 이원화된 것이다.

아무래도 교과부와 지경부의 관리 방식과 연구 풍토가 다를 수밖에 없다.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기관들은 아무래도 연구 결과를 내는 회임 기간이 긴 반면에 산업기술연구회 소속 기관들은 빠른 결과를 재촉받게 마련이다. 산업기술연구회의 홈페이지에는 ‘속도전 R&D’라는 표현이 있다. 이처럼 다른 풍토에 적응하다 보면 양쪽 연구기관 간 교류가 줄어들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과학기술계에 ‘죽음의 계곡’이란 말이 있다. 기초연구와 산업화연구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을 뜻한다. 좋은 기초연구들이 계곡을 건너지 못하고 돈만 낭비한 채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죽음의 계곡’을 건너기 위한 장치를 개발하는 게 큰 과제다.

기술이전센터, 벤처창업과 육성지원, 산학연 클러스터링, 기술경영(MOT) 도입 등은 기초연구와 산업화연구의 계곡을 잇는 구름다리다. 지난 7일 창립10주년을 맞아 국제심포지엄을 연 기초기술연구회 민동필 이사장은 “대학 등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지식을 출연연구소가 성숙시킨 뒤 이를 산업과 연결시키도록 해 국부를 창출할 것”이라며 “지식의 고속도로를 놓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10주년 행사를 한 산업기술연구회 한욱 이사장도 “과학기술과 산업의 징검다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의 협력은 한국 과학기술의 장래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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