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선정기준 "우량기업" "노동집약 업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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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지 조성공사가 한창인 개성공단 현장. [현대아산 제공]

개성공단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지난 6월 실시된 시범단지(2만8000평) 입주업체 선정 때 15개사 모집에 136개사가 지원해 9대 1의 경쟁률을 보인 데 이어 약 300개사가 입주할 본 단지(1단계, 100만평)엔 아직 분양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3000여개 업체가 참가 의향서를 제출해 10대 1 이상의 경쟁률이 예상된다.

미분양 공단이 수두룩하게 남아 있는 국내 현실과 대조적으로, 이 사업을 주관하는 토지공사나 현대아산 측도 깜짝 놀랄 정도다. 이런 가운데 입주업체 선정기준에 관한 각종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 "중국보다 훨씬 낫다"=시범단지 입주업체로 뽑힌 주방용품 업체 리빙아트는 회사 이름을 아예 소노코(SONOKO)쿠진웨어로 바꿨다. 소노코는 사우스노스코리아의 준말이다. 회사 측은 30년 이상 가동해온 공장설비 대부분을 개성으로 옮길 계획이다. 이 회사 김석철 회장은 "국내 주방용품 업체들이 중국 제품에 밀려 죄다 망하고 있다"며 "개성공단의 싼 임금과 우리 회사의 높은 기술력을 결합하면 1980년대의 전성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회사뿐 아니다. 섬유.신발.완구.시계 등 개성공단에 목을 매는 업종이 수두룩하다. 이들의 기대감은 무엇보다 북한의 낮은 임금에서 출발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임금은 월 평균 57달러로 중국(80~100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국내와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된다. 평당 15만원인 땅값도 남동공단의 땅값이 평당 60만~100만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훨씬 싸다.

남북 협상에 의해 노조도 없고 인건비도 연간 5% 이상 인상하지 못하도록 못박아 놓았다. 여기에 서울에서 가깝고, 언어가 같으며, 손 기술 등에서도 북한 근로자가 중국이나 동남아 근로자보다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완구협회 소재규 이사장은 "중국에 진출한 완구업체들도 경쟁력을 잃어 어려운 상황"이라며 "개성공단은 중국보다 임금 등 여러 측면에서 나은데 누가 탐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 "순서가 잘못됐다"=토지공사는 시범단지 입주업체를 선정하면서 신용등급.재무건전성 등 '성공 가능성'을 중점 반영했다. 업종은 전자.통신에서부터 봉제.신발.시계 등 9개 업종에 1~2곳씩 안배했으나 뽑힌 업체들의 연매출은 최소 수십억원에 이른다. 11개사는 수백억원대 이상이다. 한마디로 우량 업체들이다.

이후 중소업계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기업 규모가 작고, 업종이 사양화되고 있는 업체들 사이에서 반발이 크다. 중소기협중앙회 류길상 실장은 "국내에서도 잘하는 업체들보다 국내에선 힘들지만 북한에 가면 경쟁력 있는 수많은 노동집약적 기업이 개성에 가야 한다"며 "그래야 국내 산업 구조를 첨단화하면서 사양 산업도 살 길을 찾는 구조조정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현대아산 육재희 상무는 "무엇보다 개성공단의 성공이 중요하다. 재무구조나 사업계획, 그리고 회사가 튼실한지 여부도 따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북한 측도 이왕이면 정보기술(IT)산업 등 성장성 높은 업체들을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문제는 개성공단 사업을 남북 화해.협력을 위한 상징적 사업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남북한 경제의 구조조정 기회로 활용할 것이냐의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정양근 낙화생(땅콩)조합 대표는 "북한이 당장 소화하기 어려운 첨단 업종보다 경공업, 중공업, 첨단공업 순서로 경제발전 단계를 거치게 하는 게 길게 보면 북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토지공사 측은 "까다로운 북한 환경에 버티려면 단단한 회사가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시범단지의 경우 그야말로 시범인 만큼 성공 가능성을 중시했지만, 본 단지에선 첨단산업은 배제하고 노동집약 업종부터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검토 중"이라고 토공 관계자는 전했다.

특별취재팀 = 박혜민(팀장).홍주연.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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