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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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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 세상이 어수선해도 이 나라는 당신 덕분에 존재합니다. 친일을 가려내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좌익까지 까발려 보자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네티즌까지 나서 세상을 뒤흔들 기세입니다. 그래도 이 나라는 당신이 있기에 건재합니다. 현대사를 제대로 정리해 보겠다는 거룩한 의도이건 아니면 상대방을 골탕먹이려는 꼼수이건 잘만 다루면 우리 역사는 바로 서게 될 겝니다. 적어도 후손들에게 떳떳한 선조가 되는 셈이지요. 그래서 지난날을 차분하게 돌이켜 보자는 제안에는 찬성입니다. 제발 서둘지 말고 차분하게만 추진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각 정당이 추천하는 외부 인사들로 독립기구를 만들어 충분한 시간을 주고 과거를 정리하도록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종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는 일반에 알리지 말고 네티즌의 제보도 새로 만들 기관을 통해서만 실명(實名)으로 받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보고서가 완성되기까지는 대통령도 정치권도 시민단체도 더 이상 들쑤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머지않아 현대사 정리에 참여할 분들 당신은 우리 사회의 양심을 대변할 대한민국입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나라가 술렁거렸습니다. 그리고 우리 입장이 채 정리도 되기 전에 중국 관리가 날아와 구두합의란 걸 하고 돌아갔습니다. 김선일씨 피살사건에 직격탄 맞고 주눅들었던 외교부는 이번에도 중국과의 협상에서 좋은 소릴 듣지 못했습니다. 현실을 감안할 때 나름대로 애를 썼다지만 외교부 자신도 중국이 입으로 한 약속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까 적잖이 고심 중일 겝니다.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핀잔도 듣고 국민정서에 둔감하다는 비난도 듣고 있지만 그네들의 약속을 철저히 감시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부가 3개월마다 고구려사 관련 중국의 움직임을 국회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조치를 정치권이 취해주길 기대합니다. 한국인들의 냄비 근성을 잘 아는 중국이 이번만큼은 은근슬쩍 넘어가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조치가 되겠지요. 아무튼 중국과 힘든 줄다리기를 벌일 외교부 여러분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대한민국입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부에서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자고 야단입니다. 게다가 국가인권위원회조차 철폐를 권고한 마당에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국가보안법 규정이 헌법에 합당하다고 판정했습니다. 남북관계가 국가보안법 제정 당시와 크게 달라졌고 법안 남용의 여지도 거의 사라진 마당에 개정이냐 철폐냐 논란이 벌어지는 건 어쩌면 우리 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시민단체들의 힘과 네티즌의 엄청난 등살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 재판관 여러분은 국가의 기틀인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대한민국입니다.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아테네에서 땀흘렸던 우리 선수단 모두는 진정 대한민국입니다. 덕분에 짜증스러운 여름의 끝자락을 떨쳐보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환호와 눈물에 국민 모두가 따라 웃고 흐느꼈으며 정치인들의 뒷다리잡기 놀음에도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또 주변국들의 비열하고 옹졸한 역사 비틀기 작태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여러분께 선물했다는 부채에 쓰인 대로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습니다. 이틀 뒤면 국회도 개원한다고 합니다. 편짜서 싸우는 게 정치판의 생리라고 하지만 299명 당신들이 바로 국민을 대표하는 대한민국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멋진 구절을 선물한 대통령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얼굴입니다. 대~한민국 짜자~작 짝짝. 아자~.

길정우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