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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풍경] 신경숙 소설의 사랑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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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20면

작품 속에는 그 예술가 자신의 내면 풍경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 풍경은 직장.가정, 증권 회사 객장 등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내면 풍경이며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문화.예술 작품과 예술가를 통해 우리 시대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신경숙씨의 소설 문체는 뭔가 말하려하면서도 주억거리는 모습이다. 어눌한 혹은 의뭉스러운 그의 표정도 그런 문체를 닮았다. 문장 속에서 간단없이 구사하는 말줌임표는 내뱉고 싶은 무엇을 끝내 감추고마는 신씨 내면의 풍경이다.

신씨는 말하자면 세상에 자신을 열어놓는 것이 아니라 세상안에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골라 그것을 가둬 놓는다.

이 사춘기적 폐쇄성이 독자로 하여금 역설적으로 독자들 각자의 마음 속,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풍경을 들여다보게 한다.

신씨의 마음 속에는 너와 나, 남자와 여자가 같은 몸으로 있다. 남과 여가 뚜렷이 구분되어 서야 하는 결혼, 그래서 신씨는 지난 6월 독자들을 섭섭하게 하면서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결혼' 을 했는지도 모른다.

남미 안데스 산맥 꼭대기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 해발 3천8백m에 위치하며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을 나누는 이 광활한 호수에서 남녀가 나와 이 세상을 열었다고 남미 인디언 신화는 말하고 있다.

페루측 호수가에는 그 남녀의 동상이 서있다. 신화들은 그 남녀가 부부라고 하는가하면 오누이라고도 전하고 있다.

그 하늘 바다 같은 호수 속으로 얼마전 신경숙씨도 갔다 왔다. 갈대들이 수천수만년 피고지며 다시 흙이 돼 만든, 둥둥 떠다니는 갈대섬의 원주민 마을에서 신씨는 하염없이 허연 억새꽃을 죄없이 비추는 환한 햇살과 물만 바라고 있었다.

부부였는지, 오누이였는지 모르는 최초의 남녀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듯. 그리고 돌아와 중편 '오래전 집을 떠날 때' 를 발표했다.

남미의 신화와 백조가 된 오누이 전래설화를 떠올리면서 작중 화자가 당신은 바로 나, 아니면 나의 오빠이기에 떠나보낼수 밖에 없다는 엽서를 보내는 것 같은 환상적인 작품이다.

먼 여행에서 집에 돌아와보니 누가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죽어 백조가 된 오누이가 그 빈집에서 부부처럼 살다간 것일까. 그런 환상 속에서 주인공은 남미를 여행하면서도 내내 생각했던 당신에게 엽서를 보낸다.

"나를 지나간 당신…어디서라도 저 별빛이 당신을 지켜주기를. 내 영혼이 지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일렁이고 있는 푸른 물 속으로 휘익, 빠지는 순간,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당신을 잃고, 이토록 먼 곳에서 당신을 상념할 때까지의 애증도 한순간에 조용해졌으니. 우리가 발생시켰던 외로운 에너지만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스며들어가 몇천년을 가엾이 떠돌겠지요. "

당신에게 페루에서 보낸 이 엽서는 그러나 다시 작중 화자가 읽고 있다. 그래 당신은 바로 "지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일렁이고 있는" 내 영혼이 아닌가.

이성간의 사랑의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신씨의 소설을 지배하고 있다. 장편 '깊은 슬픔' 에서는 같은 고향 출신인 은서라는 여자와 세.완이라는 남자와의 삼각관계 사랑에서 결국 은서는 자살하고 만다. 그러면서 이런 유서를 남동생에게 남긴다.

"너는 너 이외의 다른 것에 가 닿으려고 하지 말아라.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내렴. " 은서의 사랑의 대상이었던 세와 완이라는 남자, 그러나 그 남자는 유서를 남긴 자신의 남동생이 될 수도 있으며 결국 그것은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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