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세청이 자인한 표적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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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껏 정부는 홍석현(洪錫炫) 사장의 탈세사건과 중앙일보는 별개라고 말해 왔다. 보광에 대한 세무조사와 洪사장의 개인탈세 혐의를 문제 삼은 것이지 중앙일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주장은 국세청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실이 아님이 국세청장 스스로의 증언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안정남(安正男)국세청장은 그제 국감 답변에서 "洪사장이 보광 이외에는 다른 사업을 한 적이 없고, 보광 또한 적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일보를 인수했던 자금의 출처가 정당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세무조사가 실시됐다" 고 말했다.

다시 말해 보광에 대한 세무조사가 처음부터 중앙일보 발행인인 洪사장을 겨냥해 시작된 표적조사였음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安청장의 이 말은 지난 6월 서울국세청장이 보광그룹 세무조사 사실을 공개하면서 "법인신고 성실도 분석과정에서 주요계열사의 탈세혐의가 포착됐다" 고 설명한 것과도 내용이 다르다.

결국 정부당국이 그동안 주장하던 '중앙일보와는 관계없다' 는 해명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국세청이 세무조사는 서울국세청장의 독자판단으로 이뤄졌다는 얘기도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국세청의 주장에 대해 여당의원들 까지도 "상식밖의 얘기" 라고 의문을 제기했고, 야당의원들은 "중앙일보가 손숙(孫淑)장관의 격려금 수수 등 정권의 심기를 거스른 보도 6일 뒤 보광 세무조사가 실시됐다" 고 지적하며 "정권의 치밀한 기획에 의한 표적 조사" 라고 주장했다. 또 국세청장이 보광 세무조사 결과 발표에 하루 앞서 청와대를 찾아간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번 중앙일보 사태가 정부 말대로 순수한 '조세정의 구현' 차원에서 시작됐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러나 이런 국정감사의 내용을 보면 불행히도 사실은 그게 아닌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정권 출범직후부터 집요하게 지속된 본지에 대한 부당한 지면.인사권 간섭과 외압이야말로 이번 사태를 이해하는 열쇠에 해당한다는 우리의 인식이 객관적 사실로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제 구체적으로 조사를 구상하고 착수하게끔 시킨 '윗선' 은 누구인지 당장 밝혀야 할 것이다.

국세청은 또 지난달 17일 보광그룹 세무조사 결과를 이례적으로 발표하면서 '국민의 알권리'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국세청이 언제부터 국민의 알권리를 소중히 해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왜 그때 중앙일보가 조사착수의 주요한 동기였음을 국민에게 떳떳이 알리지 않았는가.

국세청은 安청장이 세무조사 결과 발표에 앞서 청와대를 방문했다는 사실도 '국민의 알권리' 대상에서 뺐다가 뒤늦게서야 시인했다.

표적조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리혐의가 있다면 언론사 사장도 예외없이 사법처리 과정을 거치는 것이 온당하다는 입장을 천명해 왔다.

실제로 洪사장은 지금 구속돼 조사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정부가 그동안의 언론탄압 실상에 대해 자진해서 소상히 밝힐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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