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무죄 선고 가능성도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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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사건’을 맡았던 2심 재판부 판사는 “범인이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 무죄선고 가능성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13일 방송된 KBS 1TV ‘시사기획 쌈’에 출연해서다. 그는“사람 두 명을 죽여도 무기징역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12년 형이 약하다고는 할 수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프로그램은 ‘미안하다 나영아!’라는 제목으로 9세 때 술 취한 남성에게 성폭행당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조두순(가명) 사건’을 계기로 다시 재점화된 아동성폭행 담론에 대해 다뤘다. 프로에 따르면, 평균 연령 9.4세의 어린이들이 하루 2.7명꼴로 성범죄를 당하고 있다.

‘조두순 사건’은 우리 사회 아동 성폭행 수사 과정상의 문제도 여실히 보여줬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녹화, 녹음이 안됐다는 이유로 무려 5차례나 진술을 반복하게 했으며 나영이에게 법정 진술까지 시켰다. 하지만 가해자 조두순은 심신미약감경, 즉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이유로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조두순은 범행 이후 자신의 처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조두순은 경북 청송 제 2 교도소에 독방 수감돼 있다. 이곳은 보통 수감 중 문제를 일으킨 이들이 가는 곳으로, 조두순처럼 바로 수용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다. ‘시사기획 쌈’은 조두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법무부는 “조 씨 본인이 거부하고 있으며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영이 부모는 조두순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었지만 각하됐다. 안산시는 나영이를 위해 긴급치료지원비 600만원을 전달했지만 이후 이를 환수하기로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안산시 주민생활지원국 임영선 국장은 ‘시사기획 쌈’과의 인터뷰에서“나영이에게 의료비를 지원했다가 이후 금융소득이 발견돼 환수결정을 내렸었다”며 “나영이 처지를 감안해 다시 지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영이의 아버지는 “방송 이후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며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되겠다는 각오로 임했고 아이 역시 사실이 알려진다 해도 용기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조두순 사건’은 우리 사회에 아동성범죄 담론을 활성화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경상도 한 시골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김태선 교사는 2008년 2월, 지적장애를 가진 11살 난 제자 은지(가명)가 마을 사람들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됐지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며 “가슴이 찢어지는데 내가 뭔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자책감이 컸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5년간 부모의 친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30대 정 모씨. 3살 난 아이의 엄마가 된 그는 프로그램에 출연해“당시 집에 금전적으로, 사업적으로 도움 주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거부가 어려웠다”며 “자살 직전까지 갔다. 매일 ‘어떻게 하면 덜 아프게 죽을 수 있을까’ 연구했다. 단지 목숨이 붙어있기 때문에 살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사법부는 아동성범죄 피해자들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로 몰린 사람을 보호해준다”고 꼬집었다.

국민들은 아동성폭행 가해자들에 대한 양형이 강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공소시효 연장이나 폐지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아동성폭력 사건으로 현재 교도소 복역 중인 한 수감자는 “처음에는 내게 주어진 징역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며 “아직도 내 징역이 적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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