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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 수기 독점연재]11.어머니,미움을 넘어섰어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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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긴상(김씨), 이와나리(岩成)주임검찰관이 마침내 사임했다는구먼. 무척이나 괴로웠던 모양일세. "

"긴키로(김희로)를 반드시 사형장으로 데리고 가겠다" 고 장담하던 이와나리 주임검찰관이 갑자기 사임하자 이케우라(池浦)관리부장.아사이(淺井)보안과장 등 시즈오카(靜岡)형무소 간부들이 재빨리 그 소식을 전해줬다.

당시 재판과정에서 일본 검찰의 입장이 얼마나 궁색했으면 그것을 지켜본 간수들까지 "이런 재판은 처음 본다. 낯뜨거워 보고 있을 수 없다" 는 자조(自嘲)섞인 말들을 할 정도였다.

이와나리가 사임한 것은 기소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 '김희로 사건' 에는 본래 민족차별 문제 따위는 없었다" 는 검찰측 주장이 설득력을 잃고 표류한 것이 결정타였다.

재판과정에서 이와나리가 주장한 것을 요약해서 말하면 이렇다.

"본건(本件)에서 일본 경찰에 의한 민족차별 문제는 본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키로가 야쿠자 2명을 살해하고 산속으로 도주하는 차 안에서 '민족차별 문제를 내세우면 살인사건을 합리화할 수 있다' 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

나는 즉각 반대신문에서 이와나리의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살인과 민족차별은 별개의 문제다. 살인은 살인이고, 민족차별은 민족차별인데 어떻게 민족차별로 살인을 합리화할 수 있단 말인가. 검찰은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말이나 문자로 남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살인을 민족차별 문제로 합리화하려 한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내 차 안에 녹음기라도 설치해 증거를 확보했는가, 아니면 그것을 입증할 만한 증인이라도 있는가. "

이시미(石見)재판장 등 3명의 판사는 이와나리 주임검찰관의 주장과 나의 반론을 놓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검찰측 주장에 대해 입증할 것을 요구했다.

재판은 이처럼 '민족차별' 을 둘러싼 논쟁으로 몇달을 끌었으며 결국 "경찰에 의한 민족차별이 있었다" 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와나리가 사임하고 후임으로 아리타 에이지(有田榮二)란 인물이 주임검찰관이 된 몇달 후 일본 법무당국은 물론 정부까지 발칵 뒤집어놓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사건은 무슨 까닭인지 일반 국민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은폐돼 왔다.

68년 3월 7일 시즈오카 형무소에 수감된 나는 후지미야여관에서 깨끗이 자결하지 못하고 일본 경찰 손에 붙잡힌 게 억울해 늘 죽고싶은 심정이었다.

틈만 나면 간수들에게 "나를 좀 죽게 해주시오" 라는 말을 했었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되면서 '살아남아 싸우겠다' 는 마음과 '이런 재판을 받아 무엇 하나' 하는 마음이 혼재되기 시작했다.

나는 형무소 안에서 밤낮없이 감시하던 구리타 가나메(栗田要)란 간수와 인간적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재판 때마다 나를 호송했던 구리타 간수는 "저런 것을 재판이라고 할 수 있나. 일본인인 내가 부끄러워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야" 라고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

그때마다 나도 "그렇죠. 저런 재판을 받느니 차라리 자결할 테니 칼이나 한자루 넣어주쇼" 라고 맞장구를 쳤다.

구리타의 속마음까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도 그가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69년 여름이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구리타 간수가 내 감방 안으로 병에 담긴 화약을 넣어줬다.

어린이용 폭죽에 사용되는 화약이긴 해도 그것을 전부 배에 감고 터뜨릴 경우 내장이 터져 치명상을 입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다른 간수에게 발각돼 이케우라 관리부장실로 끌려갔다. 이케우라 부장은 병 속에 든 회색 화약을 테이블 위에 약간 쏟아붓고는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화약가루는 '슛-' 소리와 함께 타들어갔다.

이 광경을 지켜본 이케우라는 실내 세면기에 화약을 쏟아 붓고 수도꼭지를 틀어 흘려보내 버렸다. 형무소측은 이 일을 문제삼지 않고 덮어두었다.

70년 4월에는 구리타 간수가 내게 또 칼 한자루와 야스리(줄)를 넣어주었다. 짜증나는 재판에 잔뜩 화가 난 내가 "칼만 있으면 저 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검찰관을 죽이고 나도 그 자리에서 자결할 텐데…" 라고 말하자 정말 칼을 넣어두고 간 것이었다.

며칠 후에는 감방 창문틀에 하얀 가루가 든 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건 누가 놓고 갔는지 모른다.

나는 기분이 이상해 아주 미량(微量)의 가루를 어항 속에 넣어봤다. 금붕어 두마리가 뒤집어진 채 물위로 떠올랐다. 독약이었다.

구리타 간수는 왜 내게 칼과 줄을 넣어준 걸까. 독약은 대체 누가 넣어준 걸까. 무슨 거대한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그 이상한 일련의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정확히 진상을 알지 못한다.

재판에 염증을 느낀 구리타 간수가 정말 내 편이 돼 자살하라고 흉기나 독약을 넣어주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골치아픈 나를 자살로 유도하려는 어떤 집단의 음모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일련의 일들을 변호인단에 공개했고,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구리타 간수가 그해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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