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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인상 섭섭한 애주가의 소주타령-강형철 교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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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여보게 소주, 자네 몸값 오를만도 하네]

자네에게 편지를 쓰다니. 많이 변했네. 평소 같으면 그저 푸른 몸통을 쥐고 할머니 주름진 입술같은 뚜껑을 따 그냥 찰랑이는 마음을 가슴에 부어 하나가 되면 그만인 것을 이렇게 편지를 쓰고 호들갑을 떠니 여간 쑥스러운 것이 아닐세.

그런데 말야 곰곰이 생각하니 나도 여간 무심한게 아니었어. 이번에 자네가 세계적인 상인들 모임 (WTO) 과 국가의 성은에 힘입어 위스키와 같은 등급으로 지체 높은 자리에 오른다지만 예전 자네가 누렸던 영광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으니 말일세.

말타고 쳐들어온 몽고군과 함께 이땅에 들어와서 왕이나 사대부들에게만 현신하면서 귀인 행세를 했으며 지금도 일품의 모습은 몽고군이 주둔했던 안동이나 제주 그리고 저 휴전선 너머 개성에서나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우리가 너무 이물없었단 생각이야.

사실 내가 스무 살이 되어 이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일하게 되면서 자네를 만난 이래 세월도 좀 간 셈일세. 그때 어린 나이에 사는 일이 주는 막막함과 서러움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지.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설움에 고개가 꺽여진 것인데 그 앞에서 내 설움 이야기 한다는 게 염치 없는 짓이란 것을 알고 사람들에겐 내설움 이야기 않기로 했었지.

그때 자네가 있었지. 동네 골목 후미진 곳에 비닐 천막을 깃발처럼 흔들면서 카바이트 불빛 사이로 얼비치는 자네의 모습은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닭의 모래집을 꼭 닭똥집이라 부르며 기름장을 찍어 입에 넣고 그것도 안되면 된장에 매운 고추를 푹 처박았다가 툭 씹어먹는 그맛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늘 불러 세우는 고향 동창 같은 것이 아닌가.

그랬지. 그러니까 요사이 나라가 거덜났다며 IMF 어쩌고저쩌고 할 때도, 저 80년 눈 따갑고 코 매운 시절에도 그 울분과 같이 있었지 않은가. 자네를 위장 한가운데 털어 넣고 실핏줄 따라 전해지는 자네의 따끔한 맛을 좌로 10도 우로 10도 합해서 대략 20여도 가량 흔들며 한세상 같이 건너오지 않았는가.

가끔 중심을 잃고 다소 과다하게 흔들려 전봇대가 다가오기도 했고 아스팔트도 일어나 우리를 때린 적은 있지만 그게 뭐 대순가.

그러나저러나 이번에 자네 몸값이 많이 뛰었다지, 하기사 방맹이질만 잘해도 다음해 연봉이 억소리나게 뛰는 프로야구 선수도 있는데 한세상 우리네 엉망진창인 가슴을 달래 오늘 이만한 세상에 오도록 힘쓴 자네에게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 그래 자넨 귀해.

그런데 이젠 어쩐다지. 자네의 몸값이 너무 비싸 우리가 쉬이 접근할 수 없이 지체 높은 자리에 둥우리를 틀고 앉아 있으면 우린 잘 못만나잖아. 자네도 알다시피 우린 다소 가난한 맛에 만났지 않은가.

물론 자네의 몸값이 이번에 오른 것의 열배가 된다해도 '알콜성 음료 습관성 복용증 환자' 라 불리는 우리가 그냥 멀어지지는 않을 것일세. 여보게 소주. 옛시절 우리 선조들은 일가를 이룬 사람의 성 뒤에 '자' 자를 붙여 공경했지. 내가 자네에게 소주란 이름 대신 '소자' 라 부른다면 자넨 어쩔 셈인가. 그저 작달막한 자네 몸통 뉘어 싱겁게 웃을 것인가.

강형철 교수 <시인.숭의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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