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서와 거리먼 '인간복제'…의학계 '자성계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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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생명복제는 과학자의 손에만 맡겨선 안된다.

최근 '인간복제실험의 무조건 반대' 를 시민들의 합의안으로 내놓은 생명복제기술 합의회의의 골자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배심원으로 선발한 16명의 시민패널이 3박4일동안 전문가들의 찬반양론을 경청한 뒤 내린 결론은 동물복제실험은 허용 (10대 6) 하지만 인간복제실험은 금지 (14대 2) 해야한다는 것. 특히 인간배아 (胚芽)에 대한 복제실험까지 금지해야한다는 합의안에 대해선 과학기술계도 예상치 못한 의외의 결과다.

복제양 돌리처럼 사람의 살이나 머리카락 등 체세포를 이용한 복제에 대해선 시민들이 금지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수정한지 14일 이내인 인간 배아에 대한 복제 실험은 현재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허용하고 있기 때문.

대표적 찬성론자인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黃禹錫) 교수는 전문가패널 발표에서 "생물복제기술은 가축의 양산은 물론 인간의 장기이식과 난치병 치료에도 크게 기여한다" 며 "규제도 필요하지만 선진국에 뒤떨어지지 않는 연구 분위기의 조성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민패널은 인류복지와 경제발전을 역설한 과학기술계의 손을 들어 주지 않았다.

가정주부로 패널에 참여한 윤선주 (여.50) 씨는 합의문을 낭독하며 "가축 등 식량문제는 어떻게 나누느냐 하는 분배의 문제이며 복제 기술이 난치병 치료에 기여한다고 해도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결국 가진 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데 구태여 자연현상을 거슬러가며 돌연변이 등 예기치못한 부작용을 무릅쓸 필요가 있겠느냐" 고 말했다.

특정유전자의 대량번식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 등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반대론자들의 설득이 지지를 얻은 것. 이번 회의의 실무책임을 맡은 국민대 김환석 (金煥錫) 교수는 "생명복제 등 사회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쟁점에 대해선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시민들의 합의를 반드시 거쳐야한다" 고 강조하고 "이번 합의안이 국회에 상정 중인 생명공학육성법안 개정안에 반영될 수 있도록 국회를 비롯한 각계에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 이라고 밝혔다.

이번 합의안은 생명복제에 관한 최초의 합의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수정 14일 이내 인간배아 복제실험의 금지는 다소 지나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 유전자이식연구소장 서정선 (徐廷瑄) 교수는 "수정 14일 이내 배아는 아직 인간의 장기를 갖추지 못한 상태로 생명체로 보기 어렵다" 며 "배아복제와 장기가 형성될 때까지 키우는 개체복제는 엄연히 다르다" 고 강조했다.

개체복제는 엄격히 금지돼야 하지만 배아복제는 허용되어야한다는 것. 현재 독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의학연구용 배아복제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97년 복제양 돌리 이후 클린턴대통령이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에 의뢰했으나 결론은 체세포복제만 금지했을 뿐 배아복제 연구는 계속 허용하기로 했다. 과학기술계는 이번 합의안에 대해 "학문적 사실이나 가치 여부를 떠나 과학기술계가 일반시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서지 못했다는 점에서 반성해야할 일" 이라고 자평했다.

◇ 생명복제 연표

▶96년 7월 영국 로슬린연구소 사상최초 체세포 복제동물 복제양 돌리 탄생 ▶98년 11월 미국 ACT사 소와 인간세포 융합으로 반수반인 수정란 탄생

▶98년 12월 유네스코 인간복제금지 윤리규약 제정촉구

▶98년 12월 경희대병원 인간복제실험 발표파문

▶99년 2월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교수 국내최초 복제젖소 영롱이 탄생

▶99년 3월 국제인체게놈기구 (HUGO) 인간배아복제연구 허용촉구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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