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공기업 경영혁신 확 달라진 곳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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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2일 오후 2시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안성휴게소 여자 화장실. 친정집에 다녀온다는 주부 金모 (30) 씨는 올봄 휴게소측이 화장실안 한 켠에 설치한 '아기 기저귀 방' 에서 돌배기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 채운 뒤 입식 화장대로 다가가 매무새를 고쳤다.

金씨는 "여행길에 가장 짜증나던 화장실이 이제 집보다 편해졌다" 며 만족해했다.

걸핏하면 방만경영과 저효율.무 (無) 서비스로 비판받던 공기업들이 민영화를 통한 경영혁신으로 곳곳에서 새롭게 탈바꿈해 고객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인력을 줄이고 자산을 국내외 기업에 팔아넘겨 내실을 다지는가 하면, 말 그대로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서비스 정신으로 새롭게 무장하고 있다.

◇ 서비스를 개선하니 길이 보인다 = 자동차 2종 운전면허를 경신할 때 시력과 색맹에 손.발의 정상 여부만 보는 게 고작이지만 면허시험장을 오가며 한나절을 허비해야만 했던 게 적성검사였다. 너무나 형식적이라서 말도 많았던 이 제도가 지난 5월 폐지됐다.

도로공사가 지난 95년부터 고속도로 휴게소를 공개입찰을 통해 단계적으로 민영화하기 시작했다. 안성휴게소도 그 중의 하나. 이후 민영화된 휴게소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경쟁적으로 편의시설과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있다.

정부로부터 예산을 보조받는 정동극장은 문화예술 공연분야에 마케팅 개념을 도입했다. 케케묵은 것으로 여겨졌던 전통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맛깔나게 다듬어내자 이곳의 전통예술공연은 젊은 층과 가족단위는 물론 외국인들도 즐겨찾는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았다.

◇ 방만경영은 옛말이다 = 부산컨테이너부두운영공사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 공기업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8월부터 부두 내 공간을 확보해 수출입 화물이 부두밖 장치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통관되도록 했다. 그 결과 올 들어 컨테이너부두 이용이 15%나 늘어 터미널 수입이 늘어났고, 이용자들에게는 9만4천원이었던 컨테이너당 보관비용이 7만3천원으로 뚝 떨어지는 과실이 주어졌다.

한국종합기술금융 (KTB) 은 투자전문업체인 미래와사람이 올 1월 93억원에 인수하면서 민간 경영방식이 스며든 기업체로 탈바꿈했다. 인원을 10% 줄이고 수익성없는 지점을 대폭 정비했다. 그 결과 인수 직전 2.1%에 불과했던 자기자본비율이 9%로 껑충 뛰었다.

◇ 민영화 추진에 따른 수익도 짭짤하다 = 정부가 지난해 7월 공기업 경영혁신 및 민영화 계획을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지분매각 또는 완전 민영화를 통해 올린 수입은 총 5조5천억원 (약 50억달러)에 이른다.

말로만 민영화를 하겠다던 역대 정부의 추진실적과 비교하면 상당한 진전으로 볼 수 있다.

공기업 지분 매각은 특히 국가신인도를 높이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지난해 12월 포항제철 지분이 뉴욕에서 주식예탁증서 (DR) 방식으로 팔렸을 때만 해도 너무 헐값에 파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를 통해 한국 정부의 시장개방 의지를 확인했고, 증시가 활황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후 KTB. 한국전력. 한국통신. 포항제철 등이 잇따라 지분을 국내외에 매각했고 그때마다 국가신인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계영.김동호.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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