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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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새 영화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는 현실속에 초현실적인 환상을 곁들여 '마술적 리얼리즘' 을 영화안으로 끌어들였던 유고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신작이다.

'아빠는 출장중' '집시의 시간' '언더그라운드' 등을 통해 감독의 독특한 미학적 세계를 접했던 관객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집시들의 떠들썩하고 유쾌한 축제와 러브 스토리를 그려낸 이 영화는 89년 '집시의 시간' 에서 집시들의 사랑과 죽음의 풍경을 그려냈던 감독이 다시 집시의 세계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눈길을 모은다.

감독은 두 집시 집안의 어긋난 결혼식을 계기로 벌어지는 사건을 자유분방한 집시들의 결혼 풍습과 독특한 일상을 곁들여 낙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갑작스런 할아버지의 죽음, 그러나 이를 감추고 아버지가 빌린 사업자금을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성사시킨 아들의 강제결혼. 어수선한 피로연은 결국 서로 다른 연인을 사랑했던 신랑.신부의 도피행각으로 겉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든다.

전작들을 통해 다소 비극적 세계관을 보여줬던 감독의 인생관이 그 사이에 변화를 겪은 것일까. 이 영화에선 죽음과 신랑 신부의 도피행각마저도 오히려 유머와 용서, 경우에 따라서는 신나는 놀이처럼 비쳐져 행복한 결말을 향한 '축제' 의 의식으로 펼쳐진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감추기 위해 얼음으로 시체의 부패를 막아보려는 모습이나 신부가 선물박스를 뒤집어쓴 채 기어서 피로연장을 빠져나오는 장면 등에 장난스런 유머가 넘쳐난다.

사랑과 죽음 등 우리 삶의 풍경을 경쾌한 음악처럼 살려낸 것이 매력으로 꼽히는 반면 보는 이에 따라선 이방인들의 소란스런 잔치가 주는 낯섦과 거리감을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18일 개봉.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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