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우의 행복한 책읽기]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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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著

오래전부터 나는 어둡고 무디고 낮은 내 시각과 시력을 교정시켜줄 수 있는, 우리 옛 그림에 대한 명석한 해설서를 소망해왔다.

시중엔 그런 유형의 책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어떤 책은 전문서적이어서 내 눈높이에 비해 너무 높은 편이었고 또 어떤 책은 너무 빤한 내용으로 가득찬 입문서여서 이렇다할 깨우침이나 감흥을 전해주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오주석씨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솔출판사) 을 읽으면서 그런 갈증이 싹 가시는 듯한 청량한 감동에 젖어들 수 있게 되었다.

김명국의 '달마상' , 안견의 '몽유도원도' , 윤두서의 '자화상' , 김정희의 '세한도' 등 일반인들도 능히 알고 있을 만한 조선조 명화들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우리 옛그림이 지닌 깊고 그윽한 정취를 참신하면서도 세련되게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폭넓은 교양과 자료섭렵을 바탕으로 대상이 되고 있는 작품이 화가 자신의 삶이나 당대의 정치.사회 상황과 맺고 있는 관계를 구체적으로 되살림으로써 작품이 내장하고 있는 심오한 의미를 증폭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에서 저자는 한결같이 우리 선조들이 남긴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겉에 드러난 조형미를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작품에 담긴 선조의 고결한 정신의 깊이와 높이에 접근해 들어가는 고투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때로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 바로 옆에서 그 과정을 현장중계하는 듯한 현실감과 박진감마저 자아내고 있다.

화가가 그리는 대상과 일체가 되듯 저자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의 화가와 일체가 되어 그 은밀한 탄생의 비밀을 같이 체험하는 것이다.

이때 그의 글은 분석적 평문의 메마름을 훌쩍 뛰어넘어 소설적 묘사가 주는 사실성과 시적 암시가 주는 여운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김명국의 '달마도' 의 약동하는 선에서 본질이 아닌 온갖 부차적인 껍데기를 모조리 떨구어낸 순수 형상을 보아내며,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의 대범한 붓놀림에서 세부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인위와 자연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마음의 경지를 읽어낸다.

또 윤두서의 '자화상' 이 미완성작이면서도 예술적 탁월함을 가진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나 정선의 '인왕제색도' 에 서린 압도적인 힘과 비장한 감정의 근원을 파들어가는 대목은 비범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우리 선조의 명품이 왜 훌륭한가에 대해 말하기는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것인가를 느끼게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계속 연이어 나온다는 이 시리즈의 다음 권이 기다려진다.

남진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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