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동티모르와 코소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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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티모르 사태는 실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고향을 탈출해야 하는 상상을 초월한 비극이지만 긴 역사의 스펙트럼에서 보면 서구문명이 세계를 지배한 5백년 주기 (週期) 의 종말을 장식하는 지극히 상징적인 사건의 하나다.

서구의 아시아 식민지 개척은 1500년대에 포르투갈에 의해 시작됐다.

유라시아대륙의 서쪽 끝에 매달려 있는 작은 포르투갈이 중국의 마카오, 인도의 고아, 인도네시아의 말루쿠를 점령한 것은 경이롭게 보였다.

포르투갈은 그때까지만 해도 문명이 뒤떨어진 유럽에서도 초라한 약소국이었던 반면에 중국과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문명을 자랑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 개척은 항해술과 모험심의 승리였다.

항해기술의 수준과 해외진출의 시기가 비슷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동아시아에서 사활을 건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다.

1529년 두 나라는 로마교황 클레멘스 7세의 중재로 사라고사협정을 체결해 태평양 일대의 식민지를 분할했다.

포르투갈은 인도네시아의 몰루카스를 차지하고 스페인은 필리핀에 대한 이권을 독점했다.

그러나 한발 늦게, 하지만 훨씬 잘 무장된 군대를 앞세우고 등장한 네덜란드는 몰루카스에서 포르투갈을 추방하고 인도네시아를 독점적으로 경영했다.

포르투갈이 몰루카스를 잃고 당도한 곳이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2천5백㎞ 떨어진 동티모르였다.

인도네시아는 1945년 독립했지만 포르투갈이 5세기에 걸친 동티모르 지배를 끝낸 것은 1975년이다.

포르투갈은 동티모르 현지인들에게 '안녕' 한마디 하는 의식도 없이 그냥 떠났다.

비운의 섬은 인도네시아에 편입됐다.

동티모르는 주민투표로 독립을 결정했지만 인도네시아의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

현지에 주둔하는 2만 인도네시아군의 공공연한 지원을 받는 민병대의 동티모르 주민에 대한 테러는 사태를 내전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호주.포르투갈과 함께 동티모르의 치안을 맡는다는 '뉴욕합의' 에 서명했지만 동티모르의 질서를 회복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

하비비 대통령에게는 동티모르를 간단히 포기할 수 없다는 국민여론을 거역할 정치적인 힘이 없다.

인도네시아 지도층의 속마음은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동티모르의 독립을 인정하게 되더라도 독립의 대가를 엄청나게 만들어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 다른 종족들의 독립의지를 눌러놓자는 것이다.

동티모르는 태평양의 코소보다.

동티모르의 독립과 주민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투쟁하던 사람들은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유엔은 사실상 동티모르의 주민투표를 감독하고 관리했다.

그러나 막상 주민들의 78.5%가 독립을 지지하고, 독립에 반대하는 인도네시아 민병대가 주민을 학살하고 방화 (放火) 하는 유혈사태가 일어나도 유엔은 손을 놓고 있다.

코소보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세르비아에 폭탄세례를 퍼부은 미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유럽인의 인권과 아시아인의 인권은 다른 것인가.

주민투표로 독립 여부를 묻기로 결정했을 때 두 가지가 예상됐다.

독립안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그 결과 다소간의 폭력사태가 불가피하게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는 '불가피한 수준' 의 폭력사태 이상이다.

동티모르 주민들은 서양문명에 의한 5백년 아시아통치의 유산을 뒤늦게 정리하는 데 너무 많은 피를 홀로 흘리고 있다.

우리에게는 동티모르 주민들에게 지지와 동정을 보낼 도덕적인 의무가 있다.

내전의 위기가 내전으로 발전하고, 유엔평화유지군의 파견이 늦춰지고,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침묵 속에 동티모르에서 다시 인종청소에 가까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유엔은 그 무능을 조소받고, 미국은 아시아와 유럽의 인권을 차별한다는 비난을 받고, 호주는 동티모르의 해저유전에 대한 경제적인 이권을 놓치는 게 두려워 비겁하게도 인도네시아의 비위를 거스르는 행동을 피한다는 지탄을 받을 것이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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