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유·무죄 평결 '참여 재판' 시대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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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배심원 모의재판에서 배심원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검사는 지금 유도 신문을 하고 있습니다."(변호인) "이의를 받아들입니다. 배심원 여러분은 지금 질문은 없었던 것으로 해주십시오."(재판장)외국 드라마 속의 법정(法廷)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이 2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대법정에서 연출됐다.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는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참심제' 도입을 위해 이날 첫 모의 재판을 열었다.

사건은 40대 여인을 공중 화장실에서 살해한 혐의(강도살인)로 기소된 20대 남자의 가상 사례였다. 판사.검사.변호인은 모두 현직 변호사 중에서 선발됐으며, 일반인이 피고인과 증인 역할을 맡았다.

오전 10시. 재판이 시작되자 남녀 7명씩 배심원 14명이 긴장된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왔다. 이들은 서울 지역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무작위로 선정됐다. 검사와 변호인단은 배심원단 앞에서 적극적이었다. 소나기 질문을 퍼부으며 증인을 몰아치기도 하고,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의 넋을 달랠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들 뿐"(검사) "저 청년이 어딜 봐서 살인자 같으냐"(변호인)며 감성에 호소하기도 했다.

오후에 열린 참심 재판에는 구(區)의회의 추천을 받은 40대 남자.50대 여자 한명이 각각 참심원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판사들과 나란히 판사석에 앉아 재판을 지켜봤다.

이날 재판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공방이 법정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현행 재판은 검찰이 제출하는 수사 기록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두 재판은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배심원단의 경우 처음에는 8(무죄):2(유죄):2(보류)로 의견이 엇갈렸으나, 평의 끝에 만장일치로 무죄 결론을 이끌어냈다. 배심원으로 참여한 주부 심묘수(54)씨는 "처음엔 유죄 의견이었으나 '합리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거가 인정돼야 한다'는 말이 떠올라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참심 재판부는 별다른 이견 없이 무죄 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이날 모의 재판에서는 배심.참심제를 도입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은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검사와 변호인 간의 공방 내용, 제출된 증거 등이 사개위의 시나리오에 따라 빈틈없이 짜여졌기 때문이다.

◆ 배심.참심제=배심제는 일반 시민이 배심원단을 구성해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량은 법관이 결정하는 미국식 제도다. 합의부 구성 없이 재판장 한명이 진행한다. 일반인이 납득할 수 있는 재판 결과가 나오는 것이 장점이나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여론 재판이 될 우려가 있다. 참심제는 일반인이 법관과 함께 합의체를 구성해 유.무죄와 형량을 함께 정하는 독일식 제도다. 국민 참여로 재판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으나 재판이 법관들에 의해 주도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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