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돈 서울대교수 '고구려사 연구'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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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국역사 중 연구가 가장 미흡한 부분 중 하나가 고구려사다.

'삼국사기' 외에 마땅한 자료서적이 없는데다 중국과 북한에 그 자취가 남아있는 터라 연구가 쉽지 않았다.

최근 고구려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며 고구려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지만 고구려 전 시기를 깊이있게 통찰하는 국내 연구서 하나 없는 게 현실이다.

서울대 노태돈 (盧泰敦.50.국사학) 교수가 펴낸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2만5천원) 는 고구려사 전 시기를 포괄하는 본격적인 첫 연구서. 특히 盧교수가 고구려사에 몰두한 지 27년만에 처음으로 펴낸 연구서로 그의 학문적 성과가 총집결된 노작이다.

고구려 건국설화인 주몽설화 (朱蒙說話) 와 고구려 초기 왕계 구성으로 시작되는 '고구려사 연구' 는 초기 정치체제로부터 영역국가체제로 재편되는 과정을 거쳐 6세기 귀족연립정권으로 발전하는 고구려사의 전체 흐름을 고찰하고 있다.

그의 저서에서 주목할 부분은 '삼국사기' 의 사료적 가치를 수정론적 입장에서 재정립한 것. "삼국사기는 12세기에 편찬됐는데 기원전 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가 쓰여지기 전 이미 고구려사는 몇 차례 첨가와 윤색이 이뤄졌고 삼국사기도 이를 토대로 쓰여졌죠. 그래서 2세기말까지의 삼국사기 초기 부분은 믿을 수 없는 곳이 많아요. 그건 당시 중국문서 등의 자료와 비교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

그래서 그는 광개토대왕릉비, 고구려 중급 귀족인 모두루 (牟頭婁) 묘지 등 만주의 금석문 (金石文) 과 '삼국지 (三國志)' 등 중국문헌을 중심으로 한 사료를 근거로 고구려 초기사를 재구성한다.

현재 국내외 사학계는 '삼국사기' 초기 부분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불신론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긍정론의 두 갈래 주장이 맞서 있는 데 盧교수는 이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정론적 입장을 취해 '삼국사기' 의 사료적 가치를 높였다고 평가받는다.

이 책에서 盧교수가 주장하는 부체제론 (部體制論) 은 학계의 민감한 쟁점. 부체제론은 삼국 초기국가는 각 부 (部)가 모인 연합정권이었고 왕은 단순한 대표자에 불과했다는 이론이다.

盧교수는 75년부터 이 주장을 계속해 왔는데 현재 이 이론은 고대사학계의 주류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학계 일각에서 '삼국사기' 의 건국신화를 근거로 부체제론을 부정하고 나서 논란을 빚고 있다.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역사를 바로 보려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객관성과 보편적 논리입니다. 그 걸 만족시킬 수 있는게 사료죠. 제가 주장하는 이론들은 그 사료들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며 노교수는 객관성을 강조한다. 한국사에서 가장 활기차고 융성했던 시대라는 '소박한 민족주의' 에서 고구려 연구의 계기를 찾는 盧교수.

"열 필의 무명보다 한 필의 비단을 짜겠다는 무슨 대단한 작심을 한 바도 없었지만 이제야 한 단락을 짓고 나니 보람차다" 며 밝게 웃는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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