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홍정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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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나는 구두가 많은 편이다.

교사라는 직업상 오래 서있고 수업 시간에 맞추느라 바삐 뛰어다닐 때가 많기 때문에 신발만큼은 좀 비싸더라도 질 좋고 편한 것을 고른다.

이름 있는 신발을 구입하면 발이 편하기도 하려니와 무상으로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는 수업이 많아져 애프터서비스를 맡길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왕복 교통비며 왔다갔다 하는 시간을 아낄 겸 동네 수선집을 찾기로 했다.

저녁식사 시간에 짬을 내 구두 밑창만 갈려고 지하철 약수역 출구 옆에 있는 '구두종합병원' 을 찾았다.

그런데 몇 분이면 끝날 일을 수선하는 아저씨는 20분이 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저씨, 대충 하고 주세요" 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그 아저씨는 땀까지 흘려가며 열심히 마무리에 열중했다.

불만으로 가득 차 가게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내 눈이 흰색 칠판에 머물렀다.

거기엔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적어 주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장애인인 그 아저씨는 내 불평과 재촉을 못 듣고 나름대로 구두를 수선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내가 건네받은 것은 구두밑창뿐 아니라 굽과 형태까지 완전히 새로 다듬어진 구두였다.

달라진 구두를 보니 '나같이 성격이 급한 사람이 이런 구두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저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도 가끔 약수역을 갈 일이 생기면 나는 어김없이 그 가게를 지나간다.

그리고 여전히 구두를 열심히 다듬고 닦는 데 열중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본다.

구두가 아니라 '삶' 을 열심히 다듬고 닦아내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삶을 열심히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을 얻곤 한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홍정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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