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국회청문회- 이렇게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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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고급 옷로비' '조폐공사 파업유도' 청문회가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며 청문회의 존재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그럼에도 청문회가 권력기관의 투명성 정착에 기여하고 있다는 지적과 획기적인 개선책이 없는 한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공익에 도움 -김학수 서강대교수. 정치커뮤니케이션

우리나라의 부실시공은 성수대교.씨랜드 같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국정 운영이라는 소프트웨어에서도 너무나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고급 옷 로비 사건' 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에 대한 국회 청문회에 나타난 검찰.장관 (부인).국회 (의원) 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국가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는지 의심할 정도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가 비록 사건의 진실 여부를 밝히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공익 (公益)에 크게 기여했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군림해온 국가의 권위기관들, 예컨대 검찰.정부.국회 등이 진정한 의미에서 권위를 갖춘 곳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권위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으면서 생성됐다고 본다.

어둠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간혹 권위로 둔갑되는 법이다.

검사.장관 (부인).국회의원 등이 어떤 사람들인지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은 언제나 그들을 엄청나게 고상하고 능력있고, 따라서 존경스러운 사람들로 인식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특히 '신앙인의 탈' 을 쓰면서 얼마나 천박하고, 무식하고, 따라서 천대받아야 할 사람들인가를 이번 청문회 덕분에 알게 됐다.

그래서 1960년 '여론' 에 관한 책을 저술, 미국의 지성으로 대표됐던 당시 뉴욕타임스의 논설위원 월터 리프먼은 "투명화시키는 것만이 인류를 문명화시킨다" 고 했다.

나는 전두환.노태우 전직대통령들에 대한 청문회를 통해 청와대와 대통령직이 과거보다 훨씬 더 문명화됐고, 이제 비로소 민주적 권위가 따라붙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검찰.정부.국회.교회 등은 진정으로 국민이 믿고 따르는 국가의 대표적 권위기관들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의 활동은 끊임없이 투명화돼야 한다.

청문회는 바로 그런 투명화의 지름길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회 청문회는 여전히 국가시스템의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 이대론 안돼 -고계현 경실련 시민입법국장

옷 로비 청문회가 끝나고 조폐공사 파업유도 청문회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문회는 '진상규명' 이라는 원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오히려 존재이유까지 부정당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조사 청문회는 증인신문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그 과정을 통해 국회의 역할과 기능을 부각시키며 국민들로 하여금 어떤 쟁점에 대해 보다 자세한 지식과 정보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정치사회화 작업이다.

그러나 현재의 청문회는 외형상 조사청문회 형식을 띠고 있지만 특정한 권한과 역할은 부여돼 있지 않아 '겉핥기식' 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청문회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조사 청문회에 특별한 권한과 역할을 부여하는 제도개선책부터 검토해야만 한다.

우선적인 검토과제는 조사와 신문활동에 전문조사요원을 참여시키는 문제다.

증인을 신문하는 데는 고도의 훈련과 축적된 경험이 필요하다.

국회의원은 원래 투표에 의해 당선되는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그들 자신이 증인 신문에 전문가적인 자질이나 기량을 갖추고 있을 수 없으며 또 그럴 이유도 없다.

미국의 경우처럼 조사 전문가를 한시적으로 고용해 그로 하여금 증인을 신문토록 하고 의원들은 그 신문 결과를 토대로 질문에 나서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복질문을 없애고 바로 핵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예비조사제도를 도입, 미리 증인이나 참고인들을 상대로 서면질의와 답변을 행하도록 해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분석한 뒤 청문회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

또 이번 옷 로비 청문회가 검찰수사와 사직동팀 내사기록을 받지 못해 출발단계부터 한계에 부닥쳤던 만큼 조사 담당자에게 강력한 조사권이 부여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와 함께 증인의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미국과 영국에서 이미 시행 중인 인권보호제도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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