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팬터지문학 심포지엄 개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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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왜 팬터지냐고? 한국의 '순수문학' 이 청소년 독자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있는 지를 보라. 시대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한국문학의 전통은 8.15와 6.25, 새마을운동을 겪지 못한 90년대의 청소년들에게도 선과 악, 개화와 봉건의 이분법을 강요하거나 아니면 현실 참여나 휴머니즘의 이름으로 그들을 속박한다. 팬터지는 다르다. 팬터지는 어린 시절의 환상과 현실 사이의 가교를 잇고, 청소년들에게 백일몽과 현실, 세상과 자기 자신을 동시에 보게 하는 전망대 구실을 하고 있다. "

최근 이화여대에서 열린 '한국 팬터지 문학 심포지엄' 에서 '순수문학' 작가이면서도 컴퓨터통신으로 글쓰기를 시작, '팬터지 세대' 의 대변인격인 소설가 송경아 (29) 씨가 강력한 팬터지 옹호론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팬터지물 전문출판사 '자음과모음' 이 마련한 이 심포지엄은 문학비평가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장경렬 (서울대 영문과).정과리 (충남대 불문과) 교수와 팬터지작가 이상균 ( '하얀 로냐프강' ).이수영 ( '귀환병 이야기' ) 씨 등 신구세대가 함께 자리했다.

송경아씨는 우선 문예중앙 봄호에서 "팬터지소설의 문학적 미래는 없다" 고 단정한 평론가 하응백씨의 글을 조목조목 반박, "세계의 '순수문학' 속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환상문학 조류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면서도 한국 팬터지 소설에는 무성의하고 적대적인" 순수문학계의 이중적 시각을 비판했다.

송씨는 컴퓨터 게임을 거쳐 태동된 90년대 한국 팬터지소설을 톨킨의 '반지전쟁' 에서 시작된 '순수문학' 전통의 환상문학 잣대로 비평하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그는 팬터지 소설을 추리.SF.무협같은 '장르소설' 의 계보 속에 자리매김하면서, 이의 발전을 위해서는 장르의 관습을 체화한 비평이 절실함을 역설했다.

송씨는 또 팬터지에 영웅 주인공.서구식 고유명사.전원 (田園) 적 배경이 차용된 이유를 도시에서 자란 90년대 청소년들의 공통된 갈망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하고, 40대 비평가의 "내가 10대일 때 읽은 무협지만큼 재미가 없다" 는 지적에 대해 "국내 팬터지가 처음 출간된 것이 98년으로 아직 걸음마 단계인 데 비하면 '드래곤 라자' '탐그루' 같은 뛰어난 작품이 나온 것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고 답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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