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세계 오디오시장 음반'표준'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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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80년대 초 비디오의 표준규격을 놓고 벌어졌던 '베타맥스 대 VHS 전쟁' 이 미 음반시장에서 재연될 조짐이다.

CD를 대체하는 새로운 규격에 맞춘 음반과 플레이어가 오는 10월 출시 예정인 가운데 소니.필립스와 타임워너.유니버설 뮤직.파나소닉.파이어니어.도시바.JVC.미쓰비시가 제각기 다른 규격을 제시하며 정면승부를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니.필립스가 제시한 새 플레이어.음반규격인 '슈퍼 오디오 CD' 와 타임워너 등 연합군의 'DVD 오디오' 규격이 서로 호환성이 없다는 점.

뉴욕타임스는 최근 "소비자들의 '귀' 를 잡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며 "음반규격을 둘러싼 경쟁이 진흙탕 싸움으로 비화될 경우 결국 음반 제조업자.유통업자.최종 소비자 모두 큰 피해를 보게 될 것" 이라고 경고했다.

◇ 표준규격을 둘러싼 갈등 = 당초 97년 6월 주요 음반사들과 관련 전자부품 업체들은 DVD를 차세대 오디오 디스크의 통일규격으로 하기로 동의한 바 있다.

83년 CD 도입 이후 불어 닥쳤던 음반열풍이 최근 들어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MP - 3의 등장으로 급격히 사그라들자 뭔가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는 업계의 공통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휴 열흘만에 소니와 필립스는 돌연 "차세대 음반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겠다" 며 연합에서 이탈했다.

CD를 독자개발해 독보적 브랜드 로열티를 확보한 소니로선 연간 판매량 4천5백만개에 달하는 음반시장을 '나눠 먹기' 당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 과거 VHS를 개발하며 소니의 '베타' 를 무참히 깨부쉈던 JVC에 대한 구원 (舊怨) 도 작용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차이점과 업계 반응 = 외견상으로 디스크는 DVD와 슈퍼 오디오 CD 모두 은색의 빛나는 원형 형태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녹음기술에서 슈퍼 오디오 CD가 '다이렉트 스트림 디지털 (DSD)' 방식을, DVD는 펄스부호 (PCM) 방식을 채택하는 등 데이터 압축방식에서 큰 차이가 난다.

DVD의 장점은 '안방 극장'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멀티채널 사운드' 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 또 데이터 저장용량이 CD의 7배로 4배의 슈퍼 오디오 CD에 비해 앞선다. 가격면에서도 훨씬 저렴하다.

슈퍼 오디오 CD는 한마디로 CD의 기능을 확장한 것. 전문가들은 원음에 가장 가까운 음질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기존 CD플레이어로 슈퍼 오디오 CD를 재생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 향후 시장전망과 변수 = 일단 DVD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다. 무엇보다 2백만대 넘게 보급된 'DVD 플레이어' 보유자들이 호환이 가능한 DVD오디오쪽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소니.필립스측이 아직 '멀티채널 사운드' 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결정적이다. 때문에 주요 레코드 상점들도 "둘중에 하나만 비치하라면 DVD 음반을 들여놓을 것" 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베타와 VHS의 싸움도 기술이나 초기 시장점유율면에서 모두 우세했던 베타가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참패했듯 결과를 속단하기 힘들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타워 레코드의 스탄 고만 영업책임자는 "현 DVD의 상대적 우위는 일시적인 것으로 '소니와 필립스의 결합' 이라는 폭발력을 무시하기 힘들다" 며 "양측이 서로 다른 고객층을 타깃으로 해 'VHS - 베타전' 으로 끌고 가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고 우려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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