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예산 '보행등 잔여시간 표시기' 확대설치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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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보행자의 불안감을 줄여준다. 효과가 있다. " (찬성론)

"불필요한 시설은 오히려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예산낭비다. " (회의론)

경찰청이 서울 시내 횡단보도에 시범적으로 가설했던 '보행등 잔여시간 표시기' 의 확대 설치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서울 경찰청은 최근 6개월간 이 표시기를 ▶신촌로터리 ▶논현동 경복아파트앞 등 서울시내 6곳에 시범 설치해 "효과가 있다" 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은 것이 문제다.

잔여시간 표시기는 국내 P업체 등이 개발한 교통 안전장치. 기존 신호등 옆에 세로로 9개의 '역삼각형 등 (燈)' 을 배열해 횡단보도 녹색불이 들어온 후부터 이 등을 하나씩 꺼가면서 남은 시간을 나타내준다.

서울경찰청의 의뢰를 받아 지난 6월 이 장치의 효과를 연구한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장덕명 (張德鳴) 연구위원은 "34m의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걸린 시간이 표시기 설치 전 (25.9초)에 비해 설치후 (27.4초)에 다소 늘어났다" 며 "이는 녹색등의 점멸때 불안감을 느끼던 보행자가 표시기를 보며 안도감을 느낀 결과로 해석된다" 고 주장했다.

張연구위원은 또 "표시기 설치후 불법횡단 (31.4→24.2%) 과 무단횡단 (52.3%→44.8%) 도 줄어든 만큼 효과가 입증됐다" 고 주장했으나 "사고 감소여부는 조사되지 않았다" 고 밝혔다.

張씨의 조사결과는 서울지방경찰청을 통해 최근 경찰청에도 보고됐다.

이에대해 교통공학 전문가들은 "교통 선진국에서 이같은 장치를 설치한 사례는 한 곳도 없다" 며 설치효과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양대 도철웅 (都哲雄.교통공학) 교수는 "표시기 설치로 보행자가 안심해 보행시간이 길어지면 오히려 사고위험이 커질수도 있다" 며 "효과가 의문시 되는 장치를 추가로 설치해 막대한 예산만 낭비하는 실책은 피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보행자의 상당수가 녹색 점멸등이 켜지면 횡단보도 진입을 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교통법규도 모르는 게 더 큰 문제" 라고 입을 모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같은 양론을 의식한듯 "확대설치 여부에 대해 아직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 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업체가 개발한 잔여시간표시기는 횡단보도 한곳 당 2대 (양쪽) 를 설치하는 데 70만~90만원이 들어 서울시내 6천여곳에 모두 설치할 경우 최고 54억원의 예산이 새로 투입돼야 한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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