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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484.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제10장 대박

하지만 사뭇 변씨의 거동에만 시선이 꽂혀 있던 젊은이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서 있기만 했던 젊은이가 기다리기 질력이 났던지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차마담 손에 들려 있던 담뱃갑을 매몰차게 낚아채며 씨부렸다.

"씨발. 곤하게 잠자다가 이게 무슨 꼴이야. 난 구경이나 할 테니 둘이서 해결해. " "자기 그렇게 나오면 어떻게 해. " "그렇게 나오다니? 그럼 무단침입했다고 짭새들 불러서 뗑깡이라도 놔야 되겠어?" "아까 했던 얘기하곤 틀리잖아. "

"얘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상대도 안되는 꼰대하고 칼부림이라도 벌여야 하겠냐구?" "상대도 안해 보고 상대가 안된다는 게 말이나 돼?" "뻥 까지 마. 눈으로 보면 알지. 꼭 한판 붙어 봐야 실력을 알겠어?" 겨끔내기로 치고 받는 얘기들이 변씨가 보기엔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애송이 레지에게 연락을 받고 숙의를 거듭한 나머지, 변씨에게 모멸을 안겨 눈이 뒤집히는 순간, 스스로 일을 저지르게 만들자는 계산이 그들이 주고받는 수작 속에 뚜렷하게 배어 있었다.

변씨는 물론 그런 속셈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었다. 서울의 건설현장에서 청부 깡패로 전전하던 시절, 변씨 자신이 고비 때마다 구사했었던 방법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오기에 불을 질러 놓으면, 방어본능은 어느새 공격본능으로 돌변해 먼저 흉기를 들고 일을 저지르곤 했었다. 상대에게 아무런 폭행이나 상해도 입히지 않고 스스로 무덤을 파게 하는 그 방법은 그러나 이미 고전에 속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고전의 그물코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자신이 곱다시 걸려들고 말았다. 빈정거리고 비트는 두 사람의 수작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것이 오히려 그를 야금야금 흥분시키고 있었다.

그는 비로소 사건의 단초를 만든 차마담을 찌르기로 다잡아 먹었다. 늙은이라고 먼저 말한 것은 차마담이었다. 그 순간, 차마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쨌든 오늘 잘 만났어. 결판내기는 딱 좋게 되었잖아. 자긴 어떻게 생각해?" "결판이구 판결이구 난 제삼자야. 눈에 안보여? 아버지 같은 꼰대를 데리고 여관방에서 팔씨름을 벌이란 거야 뭐야? 개울로 데리고 나가서 물장구나 치고 놀았으면 딱 좋겠다. "

그 순간 차마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내의 말에 배신을 느껴서가 아니라, 변씨가 아무런 구체적 행동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초조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괴춤에 있던 변씨의 손이 그때, 차마담이 감고 있던 홑이불 자락을 획 끌어당겼다. 아까 다방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녀 역시 불두덩만 겨우 가린 팬티 차림이었다.

그 애송이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가슴의 유방을 노출된 채로 방치해둔 것이었다. 그러나 차마담도 잠자코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벗겨지는 이불깃을 매몰차게 낚아채면서 말했다.

"이거 왜 이래요? 영감한테 무슨 권리가 있다고 이런 행패를 부려요? 영감하고 나 사이가 부부 간이에요? 친척 간이에요? 빌려 쓰고 갚지 못한 돈이라도 있나요?" 그러나 변씨는 여전히 홑이불 깃 한쪽을 잡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만 마주 앉아 얘기할 게 있으니깐 집으로 가. " "이 사람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숨겼다면 또 몰라. 솔직하게 털어 놓고 양해까지 했었는데,가로늦게 남의 방에 쳐들어와서 협박하는 심사를 알다가도 모르겠어 정말. 집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조선 팔도가 지붕인 내가 영감이 가잔다고 실속없이 따라 나설 것 같아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니깐, 늙은이답게 저리 비켜요. 어서. "

철썩하고 따귀 얻어맞는 소리가 들렸던 것은 그 때였다. 차마담의 얼굴이 주먹을 얻어맞고 왼쪽으로 휙 돌아가는 순간, 변씨는 얼른 식칼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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