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달러화 약세…美·日·유럽 이해득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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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요즘 국제외환시장의 화두는 달러약세다. 이는 엔화와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말이다. 달러와 함께 세계 기축통화를 한결 같이 주장해온 일본과 유럽 입장에선 싫지 않은 소식이고 미국으로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 만은 않다. 미국은 경제 연착륙을 위해 달러화 가치를 조절하려는 입장이고 일본과 유럽은 경기부양을 위한 이해득실을 따지기에 바쁘다.

◇ 미국 = 최근의 달러약세에 대해 방관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로렌스 서머스 미 재무장관은 "기본적으로 강한 달러를 지지하지만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생각은 없다" 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달러약세가 일본과 유럽의 경기호전에 근거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의 달러약세는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게 미 재무부의 생각이다. 미국은 올해들어 일본과 유럽에 대해 줄기차게 경기부양을 요구해 왔다.

지난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미국 혼자 인플레 부담을 무릅쓰고 세계 유일의 수요자 역할을 해왔으나 이제는 그 부담을 일본과 유럽이 나눠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미국 경제의 과열조짐에 따라 금리인상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는 마당에 일본과 유럽이 경기회복을 통해 개도국 수출을 흡수해준다면 천만 다행일 수밖에 없다.

특히 날로 늘어나는 무역적자를 감안할 때 다소간의 달러약세는 미국의 수출을 늘려 무역적자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일본은행이 외롭게 급격한 엔강세를 막기 위해 시장개입에 나서고 있는데도 미국이 공조개입을 외면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일본 = 엔고를 막기 위해 시장개입을 하고는 있지만 약발이 별로 먹혀들지 않아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종전 같았으면 하루에 1백억달러 정도를 외환시장에서 사들여 엔고를 단숨에 엔저로 돌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미국을 의식한 탓에 개입을 해도 찔끔찔끔 (하루 10억~20억달러) 하고 마는 정도다. 대장성과 경제기획청은 당초 일본의 경기회복세에 따라 연말 또는 내년 초엔 엔화가치가 달러당 1백10엔대 초반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1분기 성장률이 예상외로 높게 나온 데다 미국 경기가 위축될 조짐을 보이면서 엔고가 반년 정도 빨리 닥쳐온 셈이다. 이 때문에 모처럼 효과를 보이고 있는 경기부양 대책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달러화 약세는 일본 금융계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대형 은행들이 지니고 있는 미국 국채 등 달러화 자산의 평가액이 줄어들어 수익이 악화되거나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효과적인 대규모 개입의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나친 엔고는 일본의 경기회복을 그르치게 된다는 점을 미국측에 충분히 납득시킬 필요가 있다.

사카이야 다이치 (堺屋太一) 경제기획청 장관 등 정부각료가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반전될 것이란 얘기를 슬슬 흘리는 것도 그런 차원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 유럽 = 유럽중앙은행 (ECB) 은 유로화 강세가 유럽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ECB가 지난달 15일 인플레 우려에 대비, 금리인상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비친 것도 '강한 유로' 를 유도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되고 있다.

금리인상으로 외자유치가 늘어나면 유로화가 강세로 돌아설 것이고, 이는 수입물가 하락으로 이어져 경기회복으로 인한 인플레 우려를 차단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물론 금리인상에 따른 기업들의 금융부담 증가와 소비자 여신감소로 인한 내수위축이 우려되지만 경기회복이 대세여서 크게 염려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

이 때문에 지난달 중순 유로당 1달러 부근까지 추락했던 유로화 가치가 지난달 30일 뉴욕시장에서 1.0702달러까지 올랐으나 시장개입을 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궁극적으로 유로화 출발시 환율인 유로당 1.17달러까지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엔화와 더불어 세계 3대 기축통화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최근 유럽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예측을 가능케 한다. 유럽연합 (EU) 15개의 올 1분기 국내총생산 (GDP) 성장률은 0.5%.지난해 4분기 성장률 0.3% 보다 0.2%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특히 지금까지 유로화 약세의 원인으로 지적됐던 침체국면의 독일경제가 올 1분기 0.4%의 성장률을 기록 (지난해 4분기 0.1%) , 회복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어 상당히 고무된 분위기다.

워싱턴.도쿄 = 김종수.남윤호 특파원,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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