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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비리로 얼룩진 지방의회 의장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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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나라 곳곳의 지방의회에서 제4대 하반기 의장 선출을 둘러싸고 부정과 비리, 갈등으로 얼룩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의장 선출 제도의 맹점 때문으로 보이지만 본질은 여전히 완고한 중앙집권적 구조와 자치문화의 부재에서 비롯하고 있다.

지난 22일 창원시의 한 시의원은 동료의원에게서 의장에 선출되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과 함께 돈을 받았다가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전남 구례와 장흥에서도 지난달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드러나지 않은 의장직 매수 구조는 훨씬 더 심각하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광주 광역시의회와 일부 구의회, 경남 도의회와 일부 시.군의회에선 의장선거 후유증까지 톡톡히 앓고 있다. 정파 간 담합과 이를 통한 의회직 나눠먹기, 빗나간 연고주의가 판을 쳤기 때문이다. 광주시의회 의장선거에선 '정치적 배신' 문제까지 가세해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

지방의회 의장선거를 둘러싼 이 같은 부조리와 부패가 선거 때만 되면 반복되는 일은 왜 그럴까.

우선 선거제도의 맹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충북과 강원도 의회를 제외한 대부분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법 제42조의 의장과 부의장을 무기명투표로 선거하고 임기를 2년으로 한다는 규정을 의장 선거 회의규칙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지방의회는 이를 이른바 '교황 선출 방식'이라고 여기면서 후보자 없는 상태에서 의장을 선출하고 있다. 이처럼 후보 없이 의장단이 뽑히고 있기 때문에 밀실에서 파벌 간 음모와 사전 담합이 부추겨지고 있는 것이다.

밀실 선출의 결과가 어떨 것인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결국 특정 세력이 지방의회를 독점하고 그로 인해 의회 운영은 파행적으로 된다. 회의규칙을 바꾸면 될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까닭도 자명하다. 기득권 세력이 독점적인 의회권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방의회 의장은 사회적 신분과 정치적 지위를 갖는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다. 당선만 가능하다면 굳이 돈에 의한 '베팅'도 피할 이유가 있을까. 의장직을 둘러싼 음모와 쟁투가 일어나는 근인(近因)이라 할 수 있다.

원인(遠因)은 자치문화의 부재에 있다. 대부분의 유권자는 지방의회에 대해 무관심하다. 이는 거의 모든 것이 중앙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의장선거 규정이 그렇듯이 자치법규들은 상위법에 꽁꽁 묶여 있다. 예산은 중앙정부가 정해준 대로 써야 한다. 지방자치의 역사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중앙정부나 지방 주민들은 지방의회를 풀뿌리 민주주의의 마당으로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자치문화의 지체(遲滯)'를 겪고 있는 것이다.

지방분권과 함께 지역권력의 분산.분화가 시급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지방의회 의장선거의 부조리한 행태는 바로 우리 사회의 지방자치 또 그 문화의 부끄러운 현주소라 할 수 있다.

민형배 참여자지21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