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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과 과학] '고인물은 썩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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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고인물은 썩는다' 는 속담은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의미. 인공 호수를 만든 뒤 환경재앙에 시달리는 시화호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긴 한다.

그런데 그 이유는 뭘까. 물은 빨리 흐를수록 깨끗하다. 또 물길이 길수록 깨끗해진다. 이는 물의 자정능력 때문. 물속에 사는 미생물들은 생활하수나 산업폐수 속에 있는 유기 오염물질을 먹어 분해한다.

그런데 이런 생물학적 작용은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량이 많을수록 활발해진다. 고인 물보다 흐르는 물에서 자정작용이 활발히 일어나는 것은 바로 물속의 산소량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천처럼 흐르는 물이나 유량이 제법 풍부한 호수에 오염 물질이 들어오면 이런 생물학적 자정 작용으로 어느 정도 깨끗해 진다.

그러나 물속에 유입된 오염 물질의 양이 너무 많으면 산소가 쉽게 고갈돼 정화작용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게다가 합성세제나 기름은 물 위에 거품이나 얇은 막을 만들어 산소가 물속에 녹아들기 어렵게 만든다.

오염물질이 희석되며 흙에 의해 흡착.여과되는 물리학적 작용도 흐르는 물이 탁월하다. 정수처리시설도 이런 원리를 이용해 설계된다. 질소.인 같은 물질을 함유한 공장 폐수나 축산 폐수가 호수같이 정체된 물에 들어가면 희석되거나 확산 되지 못하고 이를 먹이로 하는 조류 (藻類) 의 번식만 불러온다.

결국 물 색깔이 변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적.녹조 현상이 일어난다. 조류는 또 밤동안 호흡으로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를 소비하기까지 해 산소결핍을 가중시켜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기도 한다. 바로 물이 썩는 것이다.

그렇다면 논에 잔뜩 받아놓은 '고인 물' 은 왜 썩지 않을까. 논에서 자라는 벼가 물속의 질소와 인산을 흡수하고 화학적 산소 요구량 (COD) 을 낮춰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깨끗해진 물은 논 바닥을 통해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의 주요 수원이 된다. 논 바닥을 통해 지하수로 흘러드는 물의 양은 연간 1백57억여만t. 소양강 다목적 댐의 유효 저수량의 8.3배에 해당하는 물이다.

하지만 많은 비료와 농약을 쓸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수질 오염과 토양 오염을 막을 수 없다. 유기농법을 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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