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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홍콩선 공산당도 비판할 수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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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1일 중국·영국의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홍콩 반환식. [중앙포토]

주말이 되면 중국 선전(深)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홍콩의 록마차오(落馬州) 출입국관리소 주변에는 어김없이 낯선 플래카드가 등장한다. 멸공(滅共)해야 하고 하늘은 중국을 도와달라는 내용이다(아래 사진). 불과 100여m 앞은 중국이다. 가끔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공산당 규탄대회까지 연다. 같은 날 홍콩 섬 중심부인 코스웨이베이 거리에도 똑 같은 플래카드가 등장한다. 이곳에선 행인들을 상대로 전단지가 배포되는데 내용은 섬뜩하다.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공산정권에 학살당했다는 잔인한 시체 사진에서 공안에 폭행당하는 인민들의 사진,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 소식 등으로 가득하다. 이쯤 되면 홍콩인지 영국인지 혼란스럽다. 중국에선 공산당이 법보다 상위 개념이어서 공산당에 대한 비판 자체는 곧바로 반국가사범으로 몰려 처형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홍콩에선 왜 이런 비판이 가능할까. 답은 일국양제(一國兩制)에 있다. 세계에서 중국만이 가진 매우 특이한 행정제도다. 말 그대로 중국이라는 ‘한 국가에 두 개의 제도’를 병존시키는 것이다. 중국다운 실용행정의 극치라고 할 만하다.

일국양제는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의 구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개념을 처음 언급한 이는 혁명원로인 예졘잉(葉劍英)이다. 1981년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위원장이던 그는 신화사 통신과의 회견에서 “통일 이후 대만은 특별행정구로 남아 고도의 자치권을 가지고 군 주둔도 가능할 것이다. 대만사회와 경제제도·생활방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1년 뒤인 1982년 1월 덩은 미국 화교협회 리야오쯔(李耀滋) 주석과의 대담 중 예 위원장의 발언은 사실상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제도를 의미한다고 설명해 일국양제라는 말을 처음으로 거론했다. 덩이 말한 이 제도의 개념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하나의 중국 원칙하에 중앙인민정부로부터 국가의 주권이 행사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둘째는 하나의 국가 내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제도의 병존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홍콩과 대만, 마카오 등 이 제도가 실시되는 지역에는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고 아직 완전한 통일을 이루지 못한 대만에 대해서는 무력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대만을 23번째 성으로 지정해놓고 있다. 이 같은 명시적 정의에 근거해 중국은 일국양제를 한 국가에 두 개의 정부, 혹은 연방제라는 의미로 확대 해석되는 것을 경계한다. 일국양제는 덩의 의지에 따라 1984년 5월 제6기 전인대에서 홍콩과 대만, 마카오 등 3개 지역에 대한 통치방안으로 정식 통과됐다. 이에 따라 중국 헌법에도 관련 규정을 넣었다. 중국 헌법 31조에 따르면 특별행정구는 해당지역의 특수법률(예를 들어 홍콩기본법)을 만들 수 있고 이는 전인대 비준을 거쳐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84년 12월 체결된 중·영 연합성명에서도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홍콩의 현행 제도는 향후 50년 동안 변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1999년 12월 포르투갈령에서 반환된 마카오 역시 향후 50년 자치가 보장됐다.

김상선 기자

그러나 홍콩과 마카오에 대해 고도의 자치가 허용되고 있지만 민감한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의 입김이 거세다. 예컨대 홍콩과 마카오의 행정장관과 입법의원(국회의원)에 대한 완전 직선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2017년 전향적으로 검토한다는 게 중국정부의 입장이지만 더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그 때문에 지역 행정장관을 사실상 중국정부가 임명하는 현재의 제도는 완전한 자치를 구현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의 최고 홍콩전문가로 꼽히는 언론인(프리랜서) 팀 햄렛은 최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지에 기고한 글에서 “홍콩의 자치는 티베트 자치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 무늬만의 자치”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홍콩 여론 대부분은 지난 12년간의 일국양제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홍콩 문회보(文匯報)는 최근 사설에서 “일국양제가 모든 홍콩인들에게 만족을 줄 수는 없지만 홍콩의 경제·문화·사회적 가치를 그대로 보존하고 지속적인 발전의 버팀목이 됐다는 점에서 매우 성공적인 제도”라고 분석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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