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병원 카드결제 왜 안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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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용카드 결제에 대한 병원측의 기피 태도가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 YMCA가 최근 서울시내 1백60개 병원의 신용카드 사용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3분의 1 가량의 병원이 진료비로 현금만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실태는 1백개 병상 이상의 병원 4백41개 중 68%가 카드 사용을 거부했던 지난해 말 복지부 조사 결과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것이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마지못해 신용카드를 받기는 하지만 아직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병원들이 많다.

YMCA 조사에 따르면 카드결제가 가능한 병원 중 절반 가량은 응급실 등 특정항목에 대해서만 결제를 허용하거나 1개 카드사에만 가맹해 사실상 카드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절반이 넘는 병원들이 가맹점 표지를 부착하지 않는 등 구태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래서야 카드사용의 취지가 제대로 실현될 수 없고 이용자들의 불편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병원측이 카드 결제에 소극적인 가장 큰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카드 수수료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병원 경영이 어려워 도산하는 곳들이 많은데 진료비의 1.5%에 이르는 수수료와 카드결제 관리를 위한 인건비.통신비 등이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병원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벌어지는 등 경영이 악화되는 병원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카드 사용을 가로막는 절대적인 이유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지금은 다방에서도 카드를 사용하는 시대다. 하물며 의료보험 대상에 지급되는 보험 급여와 환자 부담을 합한 의료비만도 연간 10조원에 달하는 의료행위에 대해서야 두말할 나위 없다.

이런저런 방식으로 카드 사용을 기피하는 병원들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는 혹시 병원측이 세원 (稅源) 의 완전 노출을 우려한 때문은 아닌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정말 카드 수수료가 부담이라면 내년 7월부터 시행되는 수가계약제를 통해 수수료의 일정 부분을 보험자가 부담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의료비 규모에 따른 수익을 감안하면 카드회사들도 수수료를 조정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고 본다.

병원에서조차 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면 신용사회 구축은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문제는 병원과 당국의 의지라고 하겠다.

복지부와 국세청은 해묵은 과제로 민원의 대상이 돼온 병원에서의 카드결제가 이번엔 제대로 해결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개선책을 마련하고 강력하게 지도하기 바란다. 현금 때문에 환자의 생명이 위협받고 가족들이 애를 태우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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