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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추락하는 영국 노동당 구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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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 세라가 총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와 부인 세라 여사가 27일(현지시간) 노동당 연례 전당대회가 열린 남부 해안 도시 브라이턴을 방문했다. 세라 여사는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영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브라운 총리와 노동당이 그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게 중평이다. [브라이턴 로이터=뉴시스]

영국의 팝 아티스트 트레이시 엘민은 최근 더 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라는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부인이다. 총리인 고든 브라운이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바닥을 헤매고 있는 가운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부인 세라는 영국민으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열기는 어떤 연예인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 이후 영국에서 처음 나타나는 현상이다.

브라운을 총리 자리에서 버티게 하는 힘이 세라라는 사실은 이제 영국에서는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일간 가디언은 “영국에서 가장 존경 받으며 영향력을 가진 세라는 노동당의 마지막 희망인지 모른다”고 보도했다.

◆당내 반란 잠재운 퍼스트 레이디=지난해 9월 브라운은 금융위기로 영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자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다. 당내에서도 이에 대한 책임론과 지지율 저조 등을 꼬집으며 반란 움직임이 거셌다. 금세라도 브라운이 무너질 것 같이 보였다. 반란파는 9월 말 열리는 전당대회를 벼르고 있었다. 이 때 세라가 전당 대회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나는 영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를 보는게 자랑스럽다”면서 브라운을 소개했다. 때묻지 않은 솔직한 말투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소개를 받고 나온 고든과 세라가 입맞춤을 하는 사진은 영국 신문에 큼지막하게 났다.

무뚝뚝하고 일하는 기계처럼 보이던 고든 브라운에게서 처음으로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다는게 당시 반응이었다. 브라운의 지지도는 다시 올랐고 그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세라는 영국 국민들로 하여금 고든 브라운을 가족적인 사람으로 각인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다. 세라는 결혼 후 첫 아이를 낳은 뒤 곧바로 잃었고 현재의 두 아들 가운데 한 아이도 선천성 난치병을 앓고 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당수 부모들로부터도 연민의 정까지 받고 있다.

이같은 이미지를 살려 이 부부는 ‘가정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브라운은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인 청소년의 경우 가정 교육이 잘못 됐다고 보고 이른바 ‘불량 부모’(bad parents)를 재교육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불량 부모는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자녀 교육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노동당수 토니 블레어가 총리를 하던 시절시절부터 나라꼴이 엉망이 됐다는 보수적인 사람들을 위한 제스처다.

◆세라의 트위터 팔로워 영국 최다=세라는 지난해 전당대회 이후 영국의 스타로 떠올랐다. 영국민들은 그의 소박하면서 따뜻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걸 행복하게 생각한다. 르 피가로는 “토니 블레어의 부인 셰리가 야심만만한 지략가였다면 세라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여인”이라고 소개했다. 정치인 부인이 아닌 서민 냄새가 나는게 좋다는 것이다.

연일 브라운 총리를 묵사발 내는 영국 신문들 역시 세라에게는 호의적이다. ‘세라는 노동당의 비장의 무기인가’(더 타임즈) ‘감성이 넘치는 세라’ (데일리 메일) ‘세라는 겸양의 새로운 아이콘’(태틀러 매거진) ‘카메라 앞에서 더 없이 자연스러운 세라는 우아하면서 위엄도 갖춘다’(데일리 텔레그라프)는 식이다. 짖궂기로 소문난 영국 신문들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인기는 감히 누구도 건드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세라의 트위터에서 정기적으로 그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댓글을 다는 사람은 77만명을 넘어섰다. 영국 트위터 사용자 가운데 최고 기록이다. 정치인 중 네티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의 트위터 팔로워가 4만7000명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숫자다. 세라의 남편을 상대로 반란을 노렸던 데이비드 밀리반드 외무장관은 2400명이 고작이다.

◆“노동당의 총선 구세주는 세라 뿐”=세라는 브리스톨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홍보 대행사를 차려 사업을 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친구들을 잘 이끄는 리더십이 있었다고 한다. 홍보 대행사 역시 뜻이 맞는 초등학교 동창생과 차렸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가지면서 회사를 그만뒀지만 그의 '홍보 본능'은 내조로 이어졌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의 깜짝 등장 역시 세라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남편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워커홀릭 기질을 “나는 매일 최선을 다해 일할 준비가 돼있는 남편을 보는게 기쁘다”고 포장할 줄 아는 것이다.

세라의 열성팬과 노동당원들은 “재집권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노동당을 구할 사람은 고든도 밀리반드도 아닌 세라 뿐”이라며 내년 총선에도 구원투수로 등장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달 초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공개한 지지도는 보수당이 40%, 노동당이 24%로 나타났다. 이같은 지지율 추이는 1년 넘게 지속돼온 것으로 2010년으로 예정된 총선에서 승리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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