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박물관 1호 보물 (29) 얼굴박물관 ‘백자 인물형 명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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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17세기, 조선, 백자, 높이 6~8㎝

가운데엔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동자가, 양 옆엔 그 보다 조금 키가 작은 여자들이 서 있습니다. 백자로 빚은 이 작은 인형은 ‘못난이 삼형제’ 같은 아이들 장난감이 아니랍니다. 이름은 ‘명기(明器)’. 조선시대 무덤에 부장하던 작은 백자 인형이나 그릇을 일컫습니다. 죽은 이가 살았을 때 쓰던 다양한 물건을 묘에 함께 묻는 풍습은 청동기 시대부터 이어져왔습니다. 이런 부장품은 수천 수백년 뒤 후손이 조상의 생활사를 이해하는 단서가 되곤 하지요. 고대 이집트에서도 피라미드에 샵티(작은 모형 일꾼)를 묻어 왕의 사후세계를 돌보도록 하는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풍습이 나타납니다.

부장품의 종류는 시대·지역마다 다른데요. 고려시대에 실생활에 사용하던 도자기를 넣었다면,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미니어처 명기를 껴묻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은 물론 일반 서민도 명기를 부장할 수 있었답니다. 그래서 만든 이에 따라 가지각색 개성이 담겼습니다.

얼굴박물관에 소장된 백자 인물형 명기는 철채로 눈동자와 머릿결 등을 묘사했습니다. 특이한 부분은 하반신입니다. 대개 통짜로 뭉뚱그려 표현되는데 반해, 이 작품은 칼로 잘라낸 듯 날카로운 선으로 다리와 옷자락을 나타냈습니다. 17세기 작품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입니다. 하반신에 공간을 남긴 채 자기를 구워 제 모양을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누군가를 위해 개성 넘치는 인형을 빚은 어느 이름없는 도공의 얼굴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품입니다.

◆얼굴박물관(www.visagej.org)=연극연출가 김정옥 관장이 얼굴 표정과 관련된 유물들을 모아 2004년 설립했다. 김정옥·조경자 부부 인터뷰는 다음달 4일자 중앙SUNDAY에 실린다.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68번지. 031-765-3522.

이경희 기자 dungle@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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