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나오는 정책 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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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책이 오락가락하며 혼선을 빚으면 고생하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내각제혼선에 정치가 혼미하고 갖가지 갈등이 불거져 사회가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데 가종 정책혼선까지 그치지 않고 있다.

행정이나마 이 마당에 가닥을 잘 잡아야 할 텐데 실망스런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택은행은 지난 14일 주택청약통장 1순위가입자에게 아파트 청약때 로열층을 우선 배정한다고 발표했다가 오후에 건설교통부의 종용으로 허둥지둥 시행을 유보해 버렸다.

1순위자에게 로열층을 분양하면 뒤에 2, 3순위자가 배제돼 청약률이 저조해지고 부동산 분양시장에 악영향을 주리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아파트는 로열층 당첨여부에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이 달라지고 희비가 갈린다.

이런 민감한 정책변경을 충분한 사전검토와 조율도 않고 왔다갔다 했으니 무신경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새 주민등록증의 한자병기도 마찬가지다.

행정자치부는 최근 새 주민등록증에 한자병기 (倂記) 방안을 뒤늦게 검토키로 해, 이대로라면 새 주민등록증 시행은 당초 내년 3월에서 연말로 늦어지게 됐다.

주민등록증 대체작업은 한글전용을 전제로 약 2천만명의 국민이 완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뒤늦게 한자병기를 결정하는 바람에 새로운 소프트웨어의 개발, 한자를 추가로 기입하는 이중작업 등 업무의 복잡성과 인력낭비가 엄청나다.

한자병기가 정부정책이라면 처음부터 그것을 전제로 주민증 대체작업을 시작했어야 당연하다.

이뿐이 아니다.

교장임용제도의 능력별 선발원칙도 최근 교육부가 임용권을 시.도교육청에 넘김으로써 반년만에 원점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전시행정도 문제다.

산업자원부는 외국인 투자 유치가 부진하다는 지적이 일자 곧 성사될 일들이 많다며 비밀을 지켜야 할 각기업의 명단과 협상내용 등 구체적인 외자유치 현황 자료를 내놓아 관련업체로부터 빗발 같은 항의를 받았다 한다.

국민연금 파동이나 특검제.삼성차처리 문제 등 굵직굵직한 혼선이 수없이 많았고, 그에 따라 정부도 정책결정을 둘러싼 부처간 불협화음이나 혼선이 없도록 충분한 사전 조율을 거듭거듭 다짐했다.

그런데도 혼선사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정책의 신뢰는 물론 국민들에게 쌓이는 '행정피로' 를 어쩌자고 이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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