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왜곡된 역사가 왜곡을 낳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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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기도 여주 몇몇 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 단군상이 목을 잘리는 수난을 당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특정 종교 광신자들의 소행으로 보고 범인을 찾는 중이다.

문제의 '통일국조 단군상' 은 다소 조잡한 느낌을 주는 플라스틱 제품이어서 국조 (國祖) 단군의 이미지를 오히려 훼손하지 않을까 걱정스런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확고한 뿌리의식과 바른 역사관을 심는다는 취지는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한밤에 톱을 들고 들어가 하나 하나 목을 자른 사람은 누구일까. 사건은 종교적 갈등으로 비친다.

그러나 보다 깊은 곳에 깔린 것은 우리들 역사인식의 혼란이며 이 혼란이 우리사회 많은 문제의 근원이라고 본다.

민족의 시원 (始源) 이라는 단군에서부터 최근세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역사적 사안들의 사실관계와 평가에서 일치 내지는 정리된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같은 민족사를 전혀 상이한 관점에서 서술하고 2세들에게 교육하는 남북한의 차이는 극단의 대비지만 남쪽 안에서도 인식의 차이가 크고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다.

그 결과 현실을 보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시각과 지향점의 차이가 너무 크게 나타나고 그것을 조정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거나 극과 극을 오가는 바람에 제자리 걸음을 되풀이하는 것이 우리의 상황이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논란을 빚는 이른바 개혁의 문제나 광주민주화운동.박정희 (朴正熙) 평가가 모두 그런 사례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가장 큰 빈곤은 '역사의식의 빈곤' 이라 할 만하다.

또 민족통일의 문제는 민족사 인식을 근접시키는 역사의 통일 문제이며 그 첫 단계는 남쪽 내부의 왜곡 오류부터 바로잡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다 아는 대로 우리사회 역사인식의 혼란은 가장 큰 부분이 일제 식민통치의 유산이다.

일제는 민족동화정책을 추진하면서 그 핵심을 민족언어와 역사 말살에 두었다.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구가 조선사편수회였고 역사왜곡의 중심작업은 5천년 역사에서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삼국 이전의 상고사를 잘라내는 일이었다.

그 바람에 그때까지 역사적 실존인물로 조선조 역대 왕들의 제사를 받던 국조 단군이 졸지에 신화속 인물이 되고 고조선왕국과 중국왕조의 국경선충돌 - 변방영토 변동에 해당하는 국지적 사건인 한사군 (漢四郡) 이 민족사적 사건으로 왜곡, 확대됐다.

그래서 한국사의 출발은 중국의 식민지배로 귀결됐고 한국의 역사는 일본이 내세우는 자기네 역사 2천6백년보다 짧은 2천년 남짓으로 축소됐다.

당시 세계는 '약육강식' 의 논리가 지배하던 제국주의 시대였으므로 일본의 이런 만행을 일본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는 있으나 용인될 수는 없는 일이다.

해방과 함께 가장 먼저 이뤄졌어야 할 일제 청산은 바로 역사왜곡의 시정이었지만 좌우 이념대립과 정파간 정권쟁탈 소용돌이 속에서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초대 서울대 법대학장을 지낸 최태영 (崔泰永) 옹은 최근 TV 인터뷰에서 주목할만한 증언을 하고 있다.

"해방 직후 고시제도 골격을 만들 때 시험과목에 국사를 넣었다. 새로 서는 정부의 공직자들이 바른 역사관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해방후 사학계는 단재 신채호, 위당 정인보 등의 민족사학 계열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 고시 과목에 국사가 들어가면 자연히 바른 역사가 널리 보급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6.25가 나면서 이들 대부분이 납북되거나 사망하고 사학계의 주도권이 일제 식민사학 계열로 넘어가 고시의 국사과목이 식민사학을 확대, 전파하는 결과가 돼버렸다. "

그는 선배 동료들이 못다한 작업을 자기라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뒤늦게 역사연구에 뛰어들었고 1백세의 나이에 일제의 왜곡을 바로잡은 한국사 영문판 저술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침략자가 왜곡한 역사를 바로잡는 작업이 언제까지 '재야사학자' 로 일컬어지는 소수 민간인사들의 외로운 싸움으로 방치돼야 하는가.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더 이상 학자집단간 세력싸움으로 변질돼서도 안된다.

이제라도 정부가 명확한 문제인식을 갖고 정리에 나서야 한다.

그래서 학교 역사교육에서부터 대전환을 해야 한다.

역사교육이 단순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풀릴 수 있다.

문병호 편집국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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