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어린이들의 산타클로스 메이크어위시재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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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을 앓고 있는 조용준(10) 군은 8살이던 지난 2007년 당시 방영된 TV 시트콤 ‘거침 없이 하이킥’에 출연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연기 경력도 없는 어린이 환자가 인기 드라마에 출연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극 중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휠체어에 타고 있는 어린이 환자 배역을 받아 방송 출연해 결국 소원을 이뤘다.

폐포성 연부조직육종이라는 희귀암으로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국립암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권나영(18) 양은 지난달 10일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났다. 장래 희망이 외교관인 권양은 자신이 존경하는 반 사무총장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다. 휴가를 위해 방한한 반 사무총장이 바쁜 일정을 쪼개 권양을 위로하러 직접 권양의 병실을 찾아 문병한 것이다. 이날 반 사무총장은 자신이 과거 장티푸스를 앓다 이겨낸 것처럼 병마를 이겨낼 수 있다며 권양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조군과 권양이 소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서울 역삼동에 있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덕분이다. 두 사람의 부모는 아이의 소원을 듣고 이 재단에 연락을 해 도움을 요청했고, 재단은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줬다. 난치병과 싸우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 사이에 이 재단은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 ‘지니’와 같은 존재다. ‘소원 성취 기관’인 셈이다.

이 재단에 신청서류를 내면 상담을 거쳐 소원을 들어준다. 이 재단은 미국에 본부를 둔 메이크어위시재단의 한국 지부로 지난 2002년 11월에 설립됐다. 이 재단은 개인과 기업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23일 현재까지 총 1133명의 국내 난치병 어린이들이 이 재단의 주선으로 소원을 이뤘다.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들은 다양하다. 재단은 소원을 들어준 1000명을 분석한 결과 선물(66%)이 가장 많았다. 여행(19%)이 뒤를 이었고, 되보고 싶은 것과 만나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일을 꼽은 경우가 각각 5%였다.

선물로는 노트북 컴퓨터(39%)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데스크톱 컴퓨터(17%)와 피아노(13%)의 순이었다. 이에 대해 “무균실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어린이들에게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노트북 컴퓨터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재단측은 분석했다.

여행은 제주도 여행(77%)이 1위를 차지했다. 놀이공원(9%)과 서울여행(5%)이 뒤를 이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는 친구(8%)를 가장 많이 꼽았고, 가수 소녀시대(6%) 신화(4%) 슈퍼주니어(4%) 등의 스타들도 많았다.

돼보고 싶은 대상으로는 1위가 요리사(20%)였고, 마술사(8%) 축구선수(6%) 공주(6%) 순이었다. 또 하고 싶은 일로는 친구들과의 파티(15%)란 대답이 가장 많았다. 책 출간과 KBS 오락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 관람이란 응답(각각 6%)과 TV 출연(4%)등도 아이들의 소원에 포함돼 있었다.

재단에 접수된 소원 중에는 “탤런트 이준기와 결혼하고 싶다” “황우석 박사를 만나 병을 고쳐달라고 하고 싶다”와 같이 들어주고 싶어도 들어줄 수 없는 소원도 있다. 이 재단의 행정지원팀 최은선씨는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한 어린이들도 있었지만 청와대에서 어렵다는 답변이 와서 들어주지 못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최씨는 “당장 치료가 중요한 난치병 어린이들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 주고 삶의 의지를 북돋워 주면 치료 효과도 커진다”고 말했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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