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 배우, 땀으로 일군 ‘인간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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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을 병이나 장애가 아니라 한 인간이 지닌 특징의 하나로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26일(현지시간) 스페인에서 열린 제 57회 산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스페인 배우 파블로 피네다(34·사진)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알바로 파스토르와 안토니오 나아로 감독의 공동 연출작인 ‘나 역시(Yo Tambien)’라는 영화에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주인공의 삶을 연기한 피네다는 실제 다운증후군 환자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연기자가 이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페네다는 극중에서 맡은 다니엘 산체스는 다운증후군과 싸우면서 유럽에서 처음으로 대학 졸업장을 받고 지역사회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활동을 펴는 34세의 청년이다. 스페인 세비야 출신으로 설정된 산스는 초인적인 의지로 장애를 극복하면서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산스는 또 자신의 봉사활동 중에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지면서 다운증후군 환자도 정상인과 다름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산스 역을 훌륭히 소화한 페네다는 실제 몇 년 전 스페인 다운증후군 환자 중 처음으로 대학에서 특수교육학을 전공해 학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극중 인물과 내 자신은 유사한 점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이를 연기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결코 쉽지 않았다”며 “스크린을 통해 절망과 슬픔,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수 없이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운증후군 환자도 이성간의 사랑을 느끼며 이를 갈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이번 작품은 페네다의 첫 출연작이다.

이번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은 같은 영화에 출연해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직장 동료 역을 맡은 스페인 여배우 롤라 두에나스가 차지했다. 이 영화는 스페인 현지에서 다음달 16일 개봉할 예정이다.

산세바스티안 영화제는 세계영화제작자연맹(FIAPF)이 공인하는 스페인어권 지역에서 열리는 가장 권위있는 영화제다. 1953년 시작됐으며 2003년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으로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봉 감독은 이번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최익재 기자

◆다운증후군=염색체 질환으로 21번 염색체가 비장애인보다 1개 많은 3개가 존재해서 생긴다. 정신지체, 신체기형, 전신기능 이상, 성장 장애, 약한 근력 등의 증세를 보인다. 비만과 둥근 얼굴, 낮은 코, 좁은 턱 등 특징적인 얼굴 모양이 나타난다. 영국 의사 존 랭던 다운이 1862년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했다. 한때 몽골증후군으로도 불렸다. 심장과 식도 등 여러 장기에서 이상이 나타날 수 있어 수명이 짧은 경향이 있지만 부모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의료·사회적 지원으로 이를 늘려 나가고 있다. 이 질환을 잃는 사람은 봉사정신과 인내심이 강해 천사병으로도 불린다. 2004년 영국아카데미상을 받은 영국의 폴라 세이지, 미국의 크리스 버크, 호주의 대니 알바바흐 등 연기자로 활동하는 환자가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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