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와 박목월 1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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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1969년 1월 25일 한국문인협회 시화전을 참관하고 있는 육영수 여사. 맨 오른쪽이 박목월 시인이다. 사진제공 한국정책방송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 삼백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시 ‘나그네’ 전문)

박목월이 20대 중반에 지은 이 시에는 얽힌 이야기가 많다. 이 시는 1940년대 초 조지훈과 박목월의 우정이 싹트기 시작할 무렵, 지훈이 목월에게 보낸 시 ‘완화삼’ 가운데 ‘술 익는 강 마을에 저녁 노을이여’라는 대목에서 힌트를 얻은 목월이 화답시로 만들어 지훈에게 보낸 작품이었다. 그 이후 널리 애송돼 왔으나 60년대 후반에는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기인(奇人)’이며 최고의 술꾼으로 손꼽히는 김관식이 ‘나그네’가 당시(唐詩)를 표절했다는 근거가 희박한 의혹을 제기해 사실 여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기도 했다.

박목월이 청와대 안주인인 육영수의 ‘문학 가정교사’ 역할을 맡게 된 것도 육영수가 남달리 이 시를 좋아했던 것이 계기였다고 전한다. 청와대 측으로부터 그런 제의를 받고 고민에 빠졌던 박목월은 아내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여 63년 11월 강의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육영수는 한국 문학 특히 시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져 이런저런 문단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잦았다. 68년 2월 박목월이 한국시인협회 회장으로 선출됐을 때는 박목월과 몇몇 시인을 초청해 축하의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날 육영수는 시인들에게서 시와 시인들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시단을 이끌어 가는 데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박목월에게 물었다. 박목월은 시인들의 어려운 형편을 털어놓고, 저마다 개인 시집을 갖는 것이 모든 시인의 공통된 소망이라고 말했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육영수는 ‘내가 돕겠다’고 나섰다. 다만 ‘내가 도왔다는 말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해 달라’는 조건이었다.

한국시인협회가 펴낸 ‘오늘의 한국시인집’은 69년 봄 김구용·허만하·김종길·박용래·김종삼·구자운·박성룡 등 10여 명의 시집으로 첫선을 보이게 되었다. 육영수의 당부로 시집 어느 곳에도 육영수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고, 다만 책 한 귀퉁이에 ‘어느 고마우신 분의 뜻’에 따라 이 시집을 낼 수 있었다는 사실만 간략하게 밝혔다. 이 기획은 71년 봄까지 꼭 2년간 30여 명의 시집을 내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시집을 낼 시인을 선정하는 데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인선은 비교적 공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시단의 인구를 감안하면 시집을 낸 30여 명은 전체 시인의 10분의 1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숫자였다. 서운해할 시인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문단 일각에서는 ‘어느 고마우신 분의 뜻’이 비아냥 수준으로 떠다녔고, 몇몇 문인은 소리를 죽이며 ‘권력과 문학의 유착’ 혹은 ‘권력에 기생하는 문학’을 소곤거렸다. 근거 없는 헛소문이 잇따랐다. 심지어 박목월이 73년 10월 창간한 월간 시 전문지 ‘심상’은 청와대 안주인의 도움으로 나오게 됐다는 악의적인 소문까지 흘러 다녔다.

74년 8월 15일 육영수가 흉탄을 맞고 세상을 떠난 뒤 박목월이 박재삼과 함께 육영수의 전기(傳記)를 떠맡았을 때도 두 시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문인이 많았다. 사실 문단에 육영수의 전기를 쓸 만큼 육영수를 잘 아는 사람은 박목월뿐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박목월 혼자 책 한 권을 쓰는 것은 무리였기에 박재삼이 그 작업에 참여하게 됐는데 그 일로 해서 박재삼까지도 구설수에 휘말렸다.

76년 전기 『육영수 여사』가 출간된 뒤 박재삼을 만났을 때 그는 그 일에 대해 몹시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박목월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고, 그 일이 정치와는 상관없는 일일뿐더러 크게 흠 잡힐 일도 아니라는 판단에서 참여하게 됐는데 세상 사람들, 특히 일부 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자신은 원고료 이상의 어떤 혜택을 본 일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일확천금이라도 한 양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박재삼은 일평생 가난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고, 97년 가난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박재삼은 그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만난 일화도 털어놨다. 대통령이 육영수 전기 집필에 수고가 많았다며 박목월과 자신을 술자리에 초대했다는 것이다. 박재삼은 문단에서 옛 노래를 구성지게 잘 부르기로 정평이 나 있었고, 대통령 또한 옛 노래를 특히 좋아해 두 사람은 똑같이 ‘짝사랑’을 불러 노래 대결을 벌였다고 한다. 심사는 박목월이 맡았다던가.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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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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